박보균
대기자
마키아벨리는 그런 낙인의 희생자다. 하지만 그는 우회할 수 없는 존재다. 좋은 정치, 유능한 권력을 모색할수록 마키아벨리는 등장한다. 군주론의 역설적 생명력이다.
군주론은 정치적 감수성을 제공한다. 극단적 사례가 베니토 무솔리니와 안토니오 그람시다. 20세기 이탈리아의 극우 파시즘과 극좌 공산주의. 두 사람은 험악한 적대 관계였다.
무솔리니는 마키아벨리의 전공자다. 군주론 연구로 박사학위(볼로냐 대학)를 받는다. 그람시는 군주론을 새롭게 파악했다. 그람시의 진지(陣地)론은 1980년대 한국 좌파의 전략 모델이다. 하지만 그들의 접근 자세는 군주론의 진정한 의도와 다르다. 무솔리니와 그람시 모두 군주론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왜곡·활용했다.
마키아벨리의 활약무대는 16세기 도시국가 피렌체(이탈리아 중북부)다. 올해가 군주론 집필 500주년이다. 기념 세미나(‘2013년 한국정치, 왜 마키아벨리인가’)가 8일 열렸다. 최장집·곽준혁·김상근 교수 등 마키아벨리 전문가, 학자, 정치인들이 모였다. 필자도 ‘마키아벨리의 삶과 권력’을 발표했다.
마키아벨리는 고위 외교관이었다. 피렌체 이웃 국가의 군주, 통치자들을 면담했다. 그 과정에서 권력 획득·운영, 대중 장악 솜씨를 관찰·분석했다.
그의 통찰은 정교하다. 그의 관점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한국 정치도 마키아벨리의 잣대를 대면 실감나게 정리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암초를 피하듯 경멸받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 대목은 2008년 광우병 촛불을 연상시킨다. 그때 이명박(MB)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시위대의 ‘아침이슬’ 노래를 들었다. 부작용은 컸다. 반대 세력은 MB 정권의 용기 부족과 신념 결핍을 간파했다. 지지층은 실망, 이탈했다. MB는 그 실수를 경제 치적으로 보완하려 했다. 세계 금융위기 때 그는 선방했다. 하지만 무시당한 정권에 대한 대중 평가는 인색하다.
군주론은 개혁과 대중의 미묘한 관계를 설파한다. “신질서를 만드는 것만큼 어렵고 성공하기 힘들 일이 없다. 구질서 수혜자들은 개혁에 적대적이다. 반면 새 질서의 이익을 누릴 사람들의 지지는 미온적이다.” 대통령 퇴임 후 김영삼(YS)은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다”고 했다.
군주론은 “대중은 변덕스럽다. 대중을 설득하기 쉽지만, 설득 상태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고 한다. 노무현 정권은 정치 변화의 바람으로 집권했다. 하지만 집권 후 포퓰리즘 행태는 국민 다수의 불신을 샀다. 친노 세력은 무기력하게 퇴장했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재산을 빼앗아간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 직설은 시민 재산에 대한 권력의 진중한 태도를 요구한다. 그것은 세금 징수문제로 변형돼 표출된다.
지난 8월 청와대의 세법 개정안 시도가 무산됐다. 경제수석 조원동의 ‘거위 깃털’ 해명은 민심 분노를 샀다. 세금문제의 어설픈 접근은 권력 기반을 헝클어버린다. 군주론은 살아 숨 쉬는 정치학 교본이다.
군주론의 핵심은 비르투(virt<00F9>)와 포르투나(fortuna)다. 국가 발전은 운명의 포르투나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지도자의 창조적 의지, 대담한 결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세계사 기적이다. 그것은 운명을 역전시킨 리더십의 공적이다. 건국(이승만)·산업화(박정희)·민주화(김영삼·김대중)는 비르투의 서사시(敍事詩)적 승리다. 박근혜정부는 비르투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것이 정권의 성공요소다.
한국정치의 무능과 파행은 고질병이다. 집권 첫해 여당은 공약의 우선순위를 짜야 한다. 무리한 공약은 선제적으로 고쳐야 한다. 수정에 따른 민심 불만을 다독여야 한다. 그러나 황우여의 새누리당은 게으름, 청와대 눈치 보기, 역량 부족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정치에서 명분은 중요하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위선적 명분은 정치 부실을 깊게 한다. 다수 국민은 민주당 대표 김한길의 노숙투쟁을 외면했다. “야당 정치인에게 마르크스보다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는 최장집의 지혜는 유효하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그 고뇌와 해법이 마키아벨리 속에 있다.
박보균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