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복권 당첨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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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복권 당첨될 수 있을까
문용대(작가)
어느 시인이 쓴 ‘인생이라는 복권’이라는 글을 읽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인은 길을 걷다 ‘로또 명당 1등 당첨자 55명 배출’이라는 화려한 선전 문구를 보았다고 한다. 그 문구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칠십 평생, 어머니는 매주 거르지 않고 복권을 사셨지만 단 한 번도 행운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으셨다. 딸인 시인의 눈에는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했을 것이다. ‘어쩌면 저렇게 뻔한 상술에 속고도 또 속고 싶으실까’ 하는 애정 어린 타박이 글 속에 묻어났다. 하지만 그 풍경은 비단 시인의 어머니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주말이면 복권 판매점 앞은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예전 내가 일하던 잠실역 주변의 풍경을 떠올리곤 한다. 그곳의 복권 판매점은 주말이 아니어도 활기가 넘쳤다. 특히 점심시간이면 인근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200미터가 넘는 긴 줄을 서는 것이 예사였다. 2023년 11월 당시, 그 가게 앞에는 ‘1등 19회 당첨’이라는 위풍당당한 숫자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줄을 선 사람들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몇 차례 찍어두기도 했다. 과연 저들 중 몇 명이나 꿈꾸던 행운을 거머쥐게 될까. 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명당’이라는 것도 결국 통계의 마법일지 모른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매일같이 줄을 서서 사는데, 당첨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수학적인 당연함일 것이다. 명당이라서 사람이 몰리는 것인지, 사람이 몰려서 명당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긴 행렬은 그 자체로 현대인의 간절한 기원을 담은 풍경화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주변을 둘러보아도 실제로 복권 1등에 당첨됐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시인의 어머니처럼 대다수의 사람은 낙첨의 쓴맛을 보면서도 다시 지갑을 연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희박한 확률에 던지는 헛된 돈 낭비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권을 사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단순히 ‘돈’ 이상의 무엇이 들어있다.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덜 마시고, 누군가는 담배를 끊는 대신 그 돈으로 일주일치의 희망을 산다. 껌값 정도의 소박한 지출로 당첨 발표를 기다리는 설렘을 얻는다면, 그것은 메마른 삶의 활력이자 비타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게다가 술을 마시고 허공에 날려버리는 돈보다, 좋은 일에 사용되는 복권 기금에 보탬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일종의 ‘기부’이기도 하다. 복권이라는 작은 종이조각이 가져다준 드라마틱한 인생 반전 사례들은 우리를 더욱 솔깃하게 한다.
2024년 미국 뉴저지에서 들려온 소식은 그 인내의 결실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한 남성은 무려 7년 동안 단 하나의 숫자 조합만을 고집하며 복권을 샀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향해 미련하다고 비웃었지만, 그는 마침내 1조 5천억 원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당첨 직후 그가 내뱉은 “이제야 번호를 바꿀 수 있겠군” 그 한마디는, 오랜 고집이 빚어낸 해학이자 최고의 승전보였다.
따뜻한 신의가 담긴 이야기도 있다. 1984년 뉴욕의 어느 식당, 단골 경찰관 필리스는 지갑에 현금이 부족해 밥값 대신 복권 당첨금의 절반을 나누기로 식당 주인과 약속했다. 장난처럼 건넨 제안이었지만, 며칠 뒤 그 복권은 600만 달러라는 거액에 당첨되었다. 필리스는 망설임 없이 식당 주인을 찾아가 당첨금의 절반인 300만 달러를 건넸고, 이 실화는 훗날 영화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제작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돈보다 귀한 것은 사람 사이의 약속임을 증명한 사례다.
우리나라의 사례 중에는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한국적인 풍경도 있다. 부산의 한 남성은 꿈속에서 돌아가신 조상님으로부터 번호를 전해 듣고는, 잠에서 깨자마자 잊을세라 벽지에 번호를 받아 적었다고 한다. 그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는 1등 당첨의 주인공이 되었고, 당첨금 일부로 문중의 선산을 돌보며 조상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또 어떤 이는 직장 상사에게 호된 질책을 듣고 쓰린 마음을 달래려 술을 마시다 무심히 산 복권 한 장으로 인생을 바꿨다. "그날 혼나지 않았다면 복권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라 말하는 그의 소회는 우리 삶의 불운과 행운이 얼마나 긴밀하고도 얄궂게 얽혀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나 역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정말 좋은 곳에 쓸 테니 저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정성껏 신께 기도해 볼까 하는 생각 말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데,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숫자 몇 개쯤 살짝 일치시켜 주지는 않을까 기대해 보는 것이다.
시인은 글에서 참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결혼이야말로 일생일대의 가장 큰 복권을 사서 평생 긁어가는 일이며, 그래서 결혼이 참 좋은 일 같다는 생각이다. 긁을 때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긴장감,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환호하는 그 과정이 복권과 닮았다는 뜻일 게다.
생각해보면 복권 한 장 사는 돈 오천 원은 누군가에게는 껌 값이고, 누군가에게는 담배 한 갑이다. 그 돈으로 일주일 동안 "혹시나" 하는 설렘,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 당첨되면 좋고, 안 되면 좋은 일에 기부한 셈 치면 그만이다. 이번 주말에도 잠실역 그 명당자리에는 여전히 긴 줄이 늘어설 것이다. 나도 그 줄 끝에 슬쩍 서서, 당첨되면 무엇을 할지 기분 좋은 고민이나 한 보따리 사 들고 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