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황산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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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장가계, 황산을 많이 찾는데,최근 사진첩에 강남지회 마나님들의 황산여행 그림이 있어 참고로 올립니다.
황산 여행기
1. 여행배경과 출발
선정 3개교 행정실의 모든 직원들은 매월 50,000원씩을 적립하여 방학기간중 해외여행을 계획하였는데, 이미 금강산. 북경. 캄보디아를 다녀온 바 있고, 금년에는 (주) 피스트레블(사장 김길수)에서 제안한 바에 따라 1인당 600,000원의 예산으로 황산일원을 다녀오게 되었다. (참가인원 : 부부1가정. 남3. 여3 합계 8명. 행정실 총 9명중 2명은 개인사정으로 불참)
우리 민속중 큰일을 앞두고 고시레 (유래에 대한 여러 설이 있으나, 단순히 생각하여 ‘액땜’이라 생각함)하듯, 출발당시 우연치고는 심상치 않은 사건?이 셋이나 겹쳐서 시간이 지나서는 웃고 말았지만, 당시에는 가슴을 쓸어 안아야 했었다.
사연인즉, (하나) 공항시간에 맞추기 위해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함께 9시에 사무실을 나서기로 한 것인데, 한 직원이 사무적인 일로 15분여를 지체하게 되어 출발에 조바심을 불렀는데, (둘) 중국여행은 처음이라는 한분은 감회가 중압감으로 느꼈던지 출발시간을 기다리던중 짐가방을 차 속에 넣어 놓은 상태에서 키를 놓고 닫아버려서 그 짐을 꺼내려고 진땀을 흘리며 애 쓰다가 결국 카센타의 비상키 업자가 와서야 가방을 꺼낼 수 있었고, 그 바람에 또 몇십분을 허비하게 되었다. (셋) 그러한 사정으로 늦게 출발한 터에 마음이 다급해진 일행은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교훈을 잊고서 빨리 간다고 택한 코스가 하필 사고가 났는지 좀 막히는 코스가 된데다 설상가상으로 이정표를 잘 못 읽어 (사실 이점에 대해서는 우리 교통당국에 할 말이 많다. 우리들도 헷갈렸으니 외국인들은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음) 차가 삼천포로 빠진 것 (애굳게 삼천포를 들먹여 그곳의 주민들께는 죄송) --서울 외곽순환도로에서 인천공항으로 진입하는 곳의 이정표를 잘못 읽어 일산 쪽으로 빠짐--
결국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 늦게 공항에 도착했으나 통상 국제선 수속시간을 감안한 여행사의 여유 있는 스케줄로 탑승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반면, 항주공항에서 귀국할 때는 너무 이르게 시간을 잡아서 별로 넓지도 아니한 그곳의 공항에서 시간을 때우느라 매우 지루했다.
2. 여행지의 특징과 소감
1] 남경의 영곡사와 중산능
靈谷寺 :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로, 한때 1,000여명의 승려들이 머물렀을 만큼 번성했던 곳이다. 그러나 태평천국의 난을 겪으며 모두 불에 타버렸고,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 무량전이라 한다. 무량전 뒤에 60미터 높이의 영곡탑을 만날 수 잇는데, 1926-28년 국민당 정부에 의해 주도된 북벌과정에서 사망한 전몰장병을 기리는 일종의 추모탑이다. 정상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한눈에 펼쳐진 중산능의 위용을 감상 할 수 있다.
中山陵 : 중국 혁명의 아버지 손문의 능묘. ‘남경을 찾아 중산능에 들르지 않는다면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잇을 정도로 모든 중국인들이 한번 쯤은 반드시 참배하고 싶어하는 곳이란다. 현재의 능원은 손문이 죽은 이듬해인 1926년부터 3년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한다. 평생에 걸쳐 절대왕정과 싸운 혁명가의 무덤이 황제의 능을 모방하고 잇다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 황제의 무덤에만 붙인다는 ‘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무덤이 정말 화려하다. 8만 ㎡의 넓은 부지가 단 하나의 무덤을 위해 사용되었다.
392개나 되는 돌계단(당시 인구 3억 구천만 여명과 관련 있다 함)을 올라야 하는데, 이는 앞으로 황산에서의 수만 개의 돌계단에 비하면 말그대로 ‘鳥足之血’
2] 황산 일원
[비취계곡] 황산 등정에 앞서 맛보기 관광으로, 주윤발과 장쯔이가 대나무 숲에서 벌인 와이어 액션 장명으로 유명한 ‘와호장룡’의 무대인 화경지가 있는 아담한 계곡이다. 여유있는 분들이 더위를 식히는 휴양지로 안선맞춤이라 할 수 있다.
[황산]
안후이성 남부에 있는 황산은 해발 1,860 m의 연화봉을 중심으로 주위에 72개의 봉우리를 거느린 중국 제1의 명산이다.
“오악 (중국의 대표적 명산)에 오르니 모든 산이 눈 아래 보이고, 황산에 오르니 오악조차 눈에 차지 않는다”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 는 말로 안내자들은 황산을 소개한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황산은 타이산(태산)의 웅장함, 어메이산의 청량함, 항산의 운무까지 중국의 모든 명산이 가진 장점을 집대성 했다는 평이다.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아름다움은 황산에 숱한 신화와 전설을 뿌리기에 충분하다. 한족의 시조로 알려진 黃帝가 황산에서 수행을 한 후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황산을 오르는 코스는 크게 두가지로, 자광각에서 정상인 연화봉 까지 연결하는 전산코스와 운곡사를 시작으로 백아령을 거쳐 연화봉을 우회하는 후산코스로 나눌 수 있다. (우리들은 후산코스를 택하였고, 도보로 2-3시간 걸리는 등산길 대신 운곡사에서 백아령 까지 산행에 불과 10여분이 걸리는 케이블카로 올라갔다)
[숙소 : 북해빈관] 산 정상인 북해부근에 북해빈관, 서해반점, 배운루빈관이 있는데. 북해빈관은 일출과 일몰 감상의 명소인 청량대 아래에 있고, 서해반점은 운해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며, 배운루빈관은 값이 싸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1,600여 m 산위에 있어 일교차가 심한 밤에는 호텔 방안이라도 매우 추워 별도의 파카를 준비해 두고 있었는데, 두꺼운 이불을 겹으로 덮고 자다가 이불에 깔려 죽는줄 알았다고 엄살을 부리는 일행도 있었다.
[황산경치의 특징] 흔히 황산은 기암괴석, 소나무, 운해를 절경으로 친다. 하나하나의 기암괴석으로 치면 최근 한국인들의 인기가 대단한 ‘장가계. 원가계’의 경치가 더 좋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장, 원가계’의 기암괴석은 잘 생긴 수백개의 돌들이 제각각 독자적으로 자태를 뽐내는 곳이라 한다면, 황산은 산 전체가 웅장한데다 기암괴석이 합쳐진 경치라서 굳이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황산에는 우리 한국인에게 낮익은 잘 생긴 소나무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곳에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나무 영객송과 송객송등이 잇는데, 해발 1,600n의 고산에서 자란 관계로 줄기가 옆으로 퍼진 것이 특징. 그 모습이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을 환송하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하며, 1972년 황산 대화재 당시 불길이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천여명의 사람을 긴급 소집 했을 정도로 중국당국에서는 온갖 정성을 들이고 있다. (우리들은 코스가 달라 두 소나무는 구경할수 없었다) 한편, 산의 아래 쪽에는 대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그 까닭은 소나무에 치명적인 병충해를 천적으로 막기 위함이라 한다.
3] 항주 일원의 관광
[杭州] 저장성의 성도. 쑤저우(소주)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명성을 떨치던 곳. 중국인들은 “소주에서 태어나 항주에서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뇐다고 한다. 항주에서 북경까지의 대운하가 시작되는 항주는 강남에서 강북으로 연결되는 모든 물류의 출발점. 7세기 이후 중국경제에서 중요한 도시로 발전을 거듭하고, 12세기에는 북방의 여진족에게 쫃겨온 남송정부의 수도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항주를 대표하는 서호가 본격적인 관광지로 꾸며진 것도 이 시기로, 화려한 귀족문화의 중심지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靈隱飛來峰]
서호에서 서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발 209m의 작은 동산. 오대부터 원대에 걸쳐 조성된 338개의 불상이 산 곳곳에 숨어 있어 여행자들의 보물찾기를 돕고 있다. (마치 전남 화순에 있는 운문사의 천불상에 비견할 만 하다)
[靈隱寺]
중국 선종의 10대 사원이자, 1,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항주 제일의 고찰. 326년 기묘한 기운에 이끌려 항주 까지 오게 된 인도 스님 혜리가 창건했다. 한때 3,000명의 승려가 거주했을 정도로 대사찰이었지만, 문화대혁명 기간에 파괴 직전까지 몰렸다고 한다. 투철한 공산주의자들의 눈에 영은사는 민중들을 바보로 만드는 아편 그 자체 였기 때문. 일단의 홍위병들이 영은사를 가루로 만들기 위해 돌진하는 순간, 당시 중국의 제2인자 주은래가 모택동의 초상을 비치하게 하여 화를 면하게 했다고. 그러나 사찰은 폐쇄되었고 당시의 승려들은 모두 집단농장으로 끌려가 강제로 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岳廟]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 1103-42)를 기리는 사당. 악비는 관우와 함께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장군이다. 12세기 금에 의해 수도 카이펑을 함락 당한 송은 항주로 수도를 옮기고 남송왕조를 건국한다. 평소 오랑캐라 얕보던 북방민족에게 수도를 빼앗긴 중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다행이 명장 악비의 활약으로 빼앗긴 땅의 일부를 찾는다. 이미 온 백성의 영웅이 된 악비는 여세를 몰아 금나라를 몰아내자고 주장하지만, 강력한 현실론자인 재상 진회의 반대로 인해 번번이 고배를 마신다. 주전파와 화의파의 정면 충돌은 병약한 황제에 의해 화의파의 승리로 끝나고 악비는 처형 당한다. 만약 악비의 주장대로 금나라와 일전을 벌렸을 때 남송이 이길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은 수많은 역사학자들의 화두였을 정도로 중국인들에게는 아쉬운 사건ㅇ이라고 한다.
(요즈음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에 관련하여 인기리에 방송중인 ‘연개소문’ ‘대조영’ ‘주몽’등을 보면서, 덩치 큰 중국에서도 우리의 충무공이나 연개소문과 같은 처지의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에 흥미가 없지 아니하였다)
[西湖]
항주 최고의 볼거리로 동서 3.2㎞ , 남북 2.8㎞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호수. 중국의 4대 미녀중 하나인 西施의 아름다움에 비견된다는 의미에서 서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중국의 전시대를 통틀어서 수많은 시인과 화가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 넣은 것으로도 유명한 데, 특히 당나라 때 장한가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노래한 백거이와 당송팔대가의 한명인 소동파는 서호를 단지 호수가 아닌 중국문학의 살아있는 보고로 만든 대표적 인물. 이 둘은 항주의 지방관을 역임했는데, 재임기간에 서호에 있는 2개의 제방인 백제와 소제를 쌓은 것으로도 기억된다.
서호의 아름다움은 흔히 서호십경이라는 10개의 볼거리로 대표된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특정 계절이나 날씨에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으므로 10가지의 절경을 모두 즐기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역시 황산의 날씨는 좋아서 기암괴석을 비롯한 경치는 잘 보았으나 운무는 구경하지 못했고, 서호에서의 날씨는 안개가 너무 짙어서 전체의 경치는 볼 수가 없어 유감이었다)
[六和塔] 항주를 흐르는 전단강의 위용을 감상할 수 있는 7층 8각 탑으로 높이가 60m에 이른다. 970년 불법의 힘을 빌려 전단강의 범람을 막고자 건립했다고 한다. 음력 8월 18일이 되면 바닷물이 전단강으로 역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중국인들은 전강관호라는 이름을 붙여 제법 먼곳에서도 원정관광을 온다.
[쇼핑점 龍井村] 용정촌은 중국 제1의 명차인 용정차를 생산하는 곳. 중국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쇼핑점으로 실크와 한약(황산) 그리고 진주와 찻집이 잇는데, 용정차는 찻잎까지 먹어도 좋다는 유명차라 한다. 특이한 점으로 용정촌 마을의 독자적 계산으로 터널을 뚫어 교통소통에 기여했다고 하니 그 마을의 수입을 짐작할 만하다. 황산이 속해있는 안휘성 곳곳에서도 새롭게 차밭을 일구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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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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