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竹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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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竹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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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에 늦깎이로 나왔을 때다. 한 친구가 대뜸 호(號)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문인이면 당연히 호가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옆에 있는 친구들도 덩달아 귀를 기울인다. 나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싱겁게 웃어 넘겼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호가 있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었다.
올 봄이다. 선배 문인의 회갑연이나 출판기념식에 참석하고 나서 이제는 미루지 말고 호를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다는 명제만이로도 망설일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는가. 무엇으로 할까? 고심한 끝에 ‘대숲(竹林)’이라 명명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다보록한 대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동산에 자리한 초가였다. 지금은 온통 숲이 자라 어림짐작으로 집터를 헤아릴 뿐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첫숨을 들이마시던 자리는 완연히 푸르름으로 변한 것이다.
돌발한 6.25 전쟁으로 피난 보따리를 풀어 놓고 8년간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곳도 뒷산 기스락에 울창한 대숲이 자리했다. 처가에도 대숲이 뒤뜰에 널브러져 있다. 간혹 여장을 풀 경우가 생기면 첩첩히 장대가 솟아있는 틈새기를 지나 산자락을 밟는다. 그 산뜻한 정취는 아지랑이 따라 봄날을 노래하는 종달새를 쳐다보는 기분이다.
12지지(地支)에서 대나무에 어울리는 띠는 무엇이겠는가. 고화에는 호랑이가 등장한다. 범띠생인 나에게 대숲은 썩 어울릴상 싶다. 나의 모양새도 대나무마냥 거위영장 하여 대숲이란 호가 어연번듯할 것 같다. 이러한 연유만으로도 대숲이란 호는 제격에 맞아 소담스런 여운과 흥취가 풍길만 하다.
그런데, 가슴에 아리는 서글픔이 대숲에 묻혀서인지 다소간 집착하려는 속성이 나의 내면에 스며있음을 자각케 된다. 대숲을 의인(擬人)해 경의심까지 자아내려는, 그래서 가슴속 한 켠에 있는 빈자리를 메워보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불혹지연에 손위가 없는 홀앗이 처지가 되었다. 그 기준은 내종간이나 외종간을 제외한 존속인 부계혈족을 말하는 것이다. 세대주에서 호주, 종갓집 어른으로서 가족만이 아닌 혈족을 거느리고 조상을 받들어야 할 자리에 선 것이다.
그 책임을 수행하려는 일환으로 어렵게 선산을 마련했다. 남의 산달 중턱이나 들밭 길체에 볼품없이 자리했던 3대조 뫼들을 이장한 것이다. 석물이 없어 스산한 느낌도 들지만, 솔숲이 울울창창한 산자락에 증조부보, 조부모, 부모의 봉분들이 정겹게 자리하게 되었다. 계면스럽지만 이장한 후에야 선대의 함자를 비로소 알아냈다. 어떤 류의 가첩(家牒)도 본 적이 없는데다 들은 바가 없었다. 원적지에서 조부의 제적부(除籍簿)를 살핀 것이다.
그 연유가 서당 문턱에도 못 가고 구입장생해 가는 애옥사리를 타개키 위해 참척해온 부모의 삶에서 기인된 것이요, 고교 시절부터 계속된 각다분한 나의 타향살이에서 초래된 홀대라 할 수 있다.
뒤늦게 조상의 뿌리를 캐보려니 3대조 윗분은 오리무중이다. 그럴 수밖에, 증조부가 어느 섬에서 떠나와 대숲 아래 새 삶을 일구었다니까. 동족상잔의 대환란이 있기 전에는 섬에서 친족이 가끔 찾아와 시제에 참석하고 보첩을 보관하라고 권유했었단다. 그러나 더부살이 처지인 엉세판이라 할 수 없었단다. 사변이후 동족과는 영영 단절돼 버렸다.
각설하고, 증조부가 대숲에 닻을 내린 후에 4세 장손인 나까지 그 숲에서 태어났으니 3대의 체취가 대숲에 깃들었다. 선조의 숨결이 대숲에 스며있는 셈이다. 어디건 다붓이 모여 있는 마을의 산기슭에 다옥한 장대숲을 보면 괜스레 향수에 젖는 습성은 아마도 잠재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대나무는 늘 숲을 이룬다. 인간의 수명과 엇비슷한 이 식물은 군락을 이루는 공존의 생태만을 고집한다. 수많은 그루가 각기 군자의 기상을 드높여도 뿌리는 하나다.
나의 영원한 역사관이요 세계관이랄 수 있는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空義主義)요, 대가족사회(大家族社會)를 대숲은 태곳적부터 표방하며 연면히 이어온 군자중의 군자이다.
그는 댓줄기만큼 땅속줄기를 묻어 둔다. 하늘 향한 장대만큼 뿌리도 자라고 울울한 댓줄기는 탄력성이 있어 모진 바람이 아무리 몰아친다 해도 끄떡없다.
그 녀는 성장한 수만큼 죽순을 해마다 오월이면 뿜어 올린다. 그 숲만큼 땅속에 잉태시키기에 아무리 솎아내도 항시 숲으로 남아지는 것이다.
푸네기가 너무 단출하여 다남(多男)을 소원해 온 나의 가문으로는 무척 상서로운 생태여서 가문의 마스코트가 되기에 족하다. 더군다나 대나무는 설한풍을 이겨내고 사시장청(四時長靑)의 상록수로 강건한 불굴의 기상을 보이고 고매한 군자의 멋을 한껏 지녔지 않는가. 이러하니, 대숲은 가히 에메랄드 광산이랄 수 있다.
대숲은 나의 가문(家門)의 뿌리로써 가문(家紋)으로 숭상되어도 마땅할 듯하다. 혹시 소인된 나에게 대숲이란 호가 너무 버거워, 그 위세에 눌리어 호에 넉장거리가 될까 염려된다. 그러나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하리라.
우리 가문의 신화적인 상징으로써 부흥길창(富興吉昌)에 이바지할 것을 믿어 의심칭 않는다. 이제부터 나의 호는 대숲(竹林)이다.
<*이 글은 한국수필가협회 기관지인 월간지 ‘한국수필’에 15년 전에 실린 작품이고 사진은 2년전에 부천시에서 시와 꽃의 거리를 조성할 당시 촬영한 대숲의 작품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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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일반적으로 요즈음의 사람들은 다소 생소하겠지만, 전통적 동양사회에서는 본명대신 호로 불러 왔던 일이 운치있고 또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아마도 이 사랑방에서는 서로가 어느 정도 아는 처지인지라 실명을 통해 더욱 친근해지고 '투명한' 사이가 되면 좋겟다는 뜻에서 '실명제'의 원칙을 천명햇다고 생각 합니다.
竹林이면 대여섯이 더해서 후천시대 賢者들의 만남이 되면 더욱 의미가 깊겠습니다. 덜 바쁘시면 지난날에 틈틈히 써 놓으신 얘기의 보따리들을 마음껏 펼치시지요! 깊은 사연 잘 새깁니다.
대숲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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