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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烏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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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 인근에서 이곳 오산에 이사를 와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지도 만 1년을 넘어섰다.

이곳에 살면서 처음 느낀 소감은 “아~ 숨을 쉬는 공기가 다르구나!”, “아~ 야채의 맛이 틀리구나!”는 점이었다. 짙은 향이 물씬 입안을 적시는 깻잎이 일품이었고 연한 호박잎을 쪄서 밥에 싸먹는 맛은 어릴적 향수에 풍덩 빠져 미역을 감게 한다. 어느 해보다도 김장김치를 맛있게 먹으며 한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이젠 어느 고급 뷔페에 간들 야채가 맛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오산(烏山)에 온 것은 인사이동으로 인한 숙명적 여정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세상을 향한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석양의 찬란한 노을처럼 유종의 미를 발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오산 시민으로서 정을 붙이려 하는 중이고 품위있는 삶의 가치를 모색해 가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오산(烏山)에 대해 한마디 제안하고 싶어진다.

오산역을 애용하다보면 오산역의 로비에 구리판으로 새겨진 ‘역명 유래’란 양각 판이 눈에 띈다.

“오산(烏山)이라는 지명(地名)의 유래(由來)는 1900년경부터 경부선(京釜線) 철도(鐵道)를 건설(建設)할 당시에 철도공사 구간(區間)을 따라 까마귀 떼가 몰려들어서 그때부터 오산이라고 명명되어졌다.”

난 이 문구가 선뜻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내가 오산으로 이사 온 후 어떤 친구는 오산으로 갔어? 오산(誤算) 한거 아니야? 조크를 던졌다. 미소로 넘겼지만 내심 기분은 별로이다.

지명은 고장의 얼굴이면서 주민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이 도시가 단순히 까마귀 떼가 몰려들어서 붙어진 지명이라면 도대체 어떤 가치관이 부여되어 도시문화를 창조해 나갈 것인가?

오산시사(烏山市史, 1998년, 발행처 오산시) 상권에 오산(烏山)이란 지명이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조선실록의 태종 3년(1403년) 계미(癸未)에 왕이 “수원부(水原府) 오산(烏山)에 머물렀다”(p4)는 기록인 것 같다. 이 문헌으로 봐 이미 오래전에 오산(烏山)이란 시원은 시작되었음이 추측된다. 그러므로 이 지역이 서해안과 가까워 예전에는 오산천에 자라가 많아 오산(鰲山)이 변형되었다는 설은 무리한 추측일 것 같다.

어떤 향토학자는 오산의 지명이 '오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장한다.

오(烏)자는 ‘외따로’ 혹은 ‘홀로’라는 뜻의 ‘고(孤)’로 쓰여 ‘오’는 ‘고’의 ‘ㄱ’의 탈락으로 분철되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오산(烏山)은 고산(孤山)에서 변화하여 오산으로 된 것으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독산(禿山)을 상징하면서 오산(烏山)이란 지명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오(烏)의 소리는 ‘외’(고:孤)의 음차(音借)이고 산(山)은 ‘미’를「뫼」의 음운 변화로 추측하는 것이다. 멀리 외딴 산이 있으므로 ‘외뫼’, ‘오미’ 또는 ‘오산’이라 불렀다는 설인 것이다.

반면에 우리말의 오미란 "평지보다 조금 얕고, 수초(水草)가 나며 물이 늘 괴어 있는 곳"을 이르는 토속어로, 이곳에 취락이 형성될 아득한 옛날에 그런 낮은 곳이었기에 붙일 수 있는 지명일 수도 있고 ‘꽁무니’를 뜻하는 옛말인 ‘오미뇌’에서 ‘뇌’가 없어진 ‘오미’라는 지명이라고도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01년도 작성된 웹사이트의 대학리포트에는 다음과 같이 주장을 편다.

한자로 오(烏)가 들어간 땅은 오산(烏山)뿐 아니라 "오소(烏沼)", "오정(烏井)"같은 것이 있고 그 이름은 "가막소" "까막샘" 같이 부르고 있다. 따라서 "오산(烏山)" 역시 "가막산" "가막뫼"같이 불린다. 그래서 "모양이 까마귀처럼 생겨서" "까마귀 떼가 많이 날아와서"와 같은 유래가 생겼으며, "까막샘의 경우에는 "나무꾼들이 샘가에서 점심을 먹고 흘린 것을 주워먹기 위해 까마귀 떼들이 모여들므로" 그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으뜸", "높다", "신성하다"는 뜻인 옛말에서 나온 우리의 땅 이름 줄기이다.

"가막" "까막"을 소리로 옮겨 적은 땅 이름이 한자로 된 "가막(加漠)"이고 뜻으로 옮겨 적은 것이 "오(烏)"이다. 그러므로 까마귀로 유래를 찾는 것은 한자 "오(烏)"를 의식한 것 일뿐 참다운 유래라 할 수 없다. 예로 충남 홍성군 광천읍 신진리의 오루산(忠南 洪城郡 廣川邑 新津里의 烏樓山)을 일명 오성산이라고도 부르며, 이것은 까마귀가 사는 산이라는 뜻이 아니라, 가막뫼, 까막뫼, 즉 높고 신성하다는 뜻이다.

‘오(烏)’는 옥편을 찾아보면 ‘까마귀’라는 의미와 ‘검다’라는 의미, 그리고 음을 빌어 감탄사, 또 의문ㆍ반어법으로 쓰인다. 우리가 ‘오골계(烏骨鷄)’, ‘오죽(烏竹)’, ‘오건(烏巾)’, ‘오피(烏皮)’, ‘오옥(烏玉)’, ‘오수정(烏水晶)’, ‘오동(烏銅)’, ‘오려마(烏驪馬)’ 등을 이야기할 때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힌다.

특히 태양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산다는 전설에서 온 ‘일오(日烏)’, ‘금오(金烏)’, ‘직오(織烏)’는 태양을 상징한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태양 안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민족이 바로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다.

고대 색체관에서 검은색은 생명을 관장하는 의미로 세발 까마귀는 천손민족(天孫民族)의 상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태양조 삼족오(三足烏)는 천하를 다스리는 힘의 상징 그 자체였다. 빛은 깨달음과 순리와 질서의식을 찾아주는 힘이요, 어둠을 물리치고 온누리에 그늘이 없게 하는 능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해와 달의 별칭인 오토(烏兎)처럼 오산천(烏山川)은 한때 해를 상징하는 오(烏)에 맞는 음양사상에 달 속에 토끼가 있다는 뜻에서 달이된 토끼(兎)를 시내를 가로지르는 내에 붙여 토범천(兎汎川), 토현천(兎峴川)으로 일컬은 듯 하다.

고대세계에서 신령스러운 새로 대접받던 까마귀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가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와서 그리 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는 검은색을 천시하고 청렴과 결백을 상징하는 흰색을 숭상했다. 도자기도 백자를 좋아했다. 아마 유교적 관념에서 검은색을 불길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부터 조선은 일본과 달리 까마귀를 천시하는 풍조가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까마귀에게 인간이 본받아야 할 습성이 있다. 즉 효성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까마귀는 부화한 후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고,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烏鳥私情)고 소개돼 있다. 효도를 뜻하는 ‘반포(反哺)’의 유래다. 이를 오유반포지효(烏有反哺之孝),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를 달리 이르는 말로 반포조(反哺鳥), 자조(慈鳥), 혹은 효조(孝鳥)라 칭한다.

우리 민족은 본래 까마귀를 하늘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신령한 새로 생각했다. 삼족오(三足烏) 숭배도 그런 의미의 하나이다. 성서에도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아침저녁으로 공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서 까마귀는 길조로 여긴다.

현재 정월 대보름에 찰밥을 먹는 풍속은 신라 때부터 내려온 풍속으로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주사(天柱寺)에 행사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가 왕에게 경고하여 반역을 꾀하는 간신을 사살하였으므로 보름날 찰밥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먹임으로 신세를 갚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져 온다.

이제 오산의 향토학자들이 모여 오산의 지명을 재해석하여 오산역에 안내판을 새로이 붙이고 오산지명의 유래를 시청 홈페이지에도 올려 미래의 도시로 거듭날 문화의 도시 오산시가 되기를 삼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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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통일교회 목사 원고를 오산문화원장 다음 페이지에 실어준 이유는 편집위원들에게 보내준 참아버님 자서전에 감명받아 특별히 배려해 주는 것 같습니다. 형제님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책은 자신의 이름으로 430권 보급하게 된다면 천일국 창건을 눈앞에 다가올 것 같습니다.

고종우님의 댓글

시인님들의 글이 우리 홈을 은혜로 가득,
높은 수준의 홈으로 격상시키고 있습니다.
잘 읽고 감동 받고 오산가서 살고 싶고 ,그러네요.

문정현님의 댓글

까마귀가 얼마나 큰지 !!~~
공원에도 도심에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유심히 보면 까만빛에서 보랏빛으로
최상의 갑옷을 입은 분위기입니다.
힘도 있어 보이고 !~ 부지런한 새!~
처음에는 재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자꾸
보니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창조물로
바라봅니다.

내 머리핀만 쫒지 않으면 감지덕지네요.

소상호님의 댓글

논문식으로 조목 조목 열거하시고
논리 정연하게 다듬어
읽는 이의 마음을 정리해줍니다
오산에 대하여
특히 오자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늘렸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제가 초등학교다닐때 많이 간곳입니다.
어머니의 사촌들이 거기 삽니다.. 외갓집 친척들이지요.
기차역 바로 옆에 어머니 사촌 오빠<외삼촌뻘> 가 사셨었지요.
제어린 시절의 추억의 고장이기도 합니다.지금도 병점에 언니가 살므로 고향 아산 성환 천안 그런델 갈때 늘 자동차로 지나가지요.....목사님이 거기 계시는군요,

이존형님의 댓글

요즈음은 까마귀도 귀하더라구요.
수년전에 까마귀 고기가 거시기의 거시기에 좋다고 그러니
한마리에 삼십만원을 호가하든 때가 있었습니다.
오산에서 나쁘게 오산되어지는 우리의 모든것을 까마귀에 물려서
확 날려뿌리이소.

조항삼님의 댓글

이태곤 목사님 오산의 유래를 고문헌을 통하여 해박하게 부연 설명하여
주셔서 의미깊게 잘 보았습니다.

오산교회 개척당시 참아버님께서 불시에 방문하시어 식구들에게 신권
지폐를 하사하시면서 이제부터"烏山을 眞山(진산)으로 개명하여라"하신 기억이
떠오르는 군요.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전국 문화원과 오산시 관공서및 주요기관에 배포되는 <오산문화원> 발행 기관지에 오산통일교회 담임목사명으로 실린 <명사칼럼> 원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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