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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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여!
내가 소중히 여기는 기념품들을 보존하는 책장에서 희끔한 헝겊으로 묶어진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뭘까? 내가 갈무리한 물건이 분명할 텐데 어령칙하기만 하다. 동여맨 매듭들을 풀어 헤처보니 빨강, 파랑, 초록, 검정색으로 배열된 백두산 지도에 감싸인 부석(浮石)이 나타났다.
무게를 가늠해 보려 그 돌을 손바닥 위에 올려 가볍게 나울거렸다. 너무 가벼워 전혀 돌이 아닌 듯하다. 세면장으로 달려가 물통에 넣자마자 둥둥 떠다닌다. 움켜주고 물속으로 밀어 넣어보려니 금방 물위로 솟구쳐 오른다. 올망졸망한 구멍이 나 있는 표면을 손톱으로 살살 긁어보니 팍삭이 문드러진다. 손수건에 떨어져 나간 한 알맹이를 입에 넣고 앞니로 자근자근 씹어보면 단맛만 없을 뿐 설탕가루를 씹는 느낌과 같다.
부석은 마그마가 공중으로 폭발적으로 터지면서 갑자기 압력이 감소한 결과로 휘발성분이 빠져 나가면서 공중에서 식어서 생긴 것이라 한다.
모양새가 달의 표면과 흡사한 이 부석은 희읍스름한 바탕에 주근깨가 검성드뭇이 박혀있다. 전체 색상이 희끔하기도 하고 노르무레 하는데 작디작은 유리질이 살피살피 박혀 빛에 반짝거린다. 백두산(白頭山), 혹은 장백산(長白山) 이름은 온 산이 이 색깔의 부석을 일컫는 데서 굳어진 것이다.
지도 위에는 ‘백두산 트래킹 캠프’란 제목에 ‘백두산에 올랐습니다.’란 붉은 글씨가 지도 아래에 인쇄되었다. 지도는 북파관광도로(北坡觀光道路)와 서파등산림도(西坡登山林道)가 보물지도마냥 표시되어 있었다.
나의 첫 번째 백두산 여행은 7년 전 여름이었다. 비행기로 북한 영공을 피해 동으로 에돌아 러시아연방을 거쳐 장춘에 내려 버스로 연길에 여장을 풀고 이튿날 백두산 천문봉에 오를 수 있었다.
지프차를 타고 오르는데, 전날 종일 비가 내린 탓인지 겹겹이 채워진 안개가 사면을 휘익~휘익 감돌아 속절없이 가슴을 졸였다. 수차례나 백두산에 올랐어도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무슬림 여인처럼 시야를 가린 첩첩한 안개바다에서 허우적이다 내려온 경우가 다반사라는 가이드의 멘트가 귓전을 맴돈다. 수만리에서 비행기로 에돌고 지루하게 버스로 달려온 시간이 아깝고 투자된 경비가 허망해 질것은 물론이지만, 언제 다시 먼 이곳을 또 올 건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찹찹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하늘을 향해 기원을 올렸다. 천지를 볼 기회를 허락해 주신다면 당신께 약속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노라고.
지프차에 내려 천문봉 오르막을 가픈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니, 아 - 짙푸른 질펀한 호수가 눈 아래 장엄하게 열려 있었다. 순간, 조선족인지 한족인지 개인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텃세를 부렸다. 나는 못들은 척 기도할 만한 등성이를 찾아 얼른 앉았다. 그 사람은 씩씩거리며 되돌아오라고 언성을 높였지만, 심각한 기도의 순간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돌부처가 되었다. 파노라마 사진 장사치의 삐끼인 그는 제풀에 지쳐 가버리고 나는 천지의 기운을 목마른 낙타가 물을 들이키듯 온 몸으로 받아들여 채우고 채웠다. 온 산하를 굽어보며 감사기도를 올리면서 좀 전에 약속을 올린 그 꿈을 위해 충효의 도리를 다 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천운이 임하기를 간구 드렸다.
일행은 연변을 누비며 해란강을 가로질러 ‘선구자’를 개선가인양 흥얼거리며 두만강 기슭에 여독을 풀었다. 푸른 물이 아닌 충충한 두만강은 내 고향을 가로지르는 섬진강 폭보다 좁았다. 아 - 꿈은 이런 강폭 같은 것을…….
두 번째 백두산 여행은 4년 전 늦여름이었다. 인천연안부두에서 훼리호로 단동에 내려 버스로 고구려 도읍지였던 졸본성을 지나 통화에서 야간열차의 이층침대에서 드새다 이도백하역에서 선잠 깨어 버스로 이동하여 천지입구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젠 배낭을 메고 장백폭포에서 잠시 머물다 가파른 긴 계단을 오르고 올라 천지연과 만나는 드넓은 평원의 달문에 들어섰다.
도착한 등반객들이 꽤 되건만, 물이 너무너무 차가워 아예 아무도 들어갈 엄두를 못냈다. 난 스스럼없이 벗은 등산화에 양발을 걸쳐놓고 맨발로 천지에 들어갔다. 발가락 뼈마디가 시려오는 환희의 고통속에 임과 뜨거운 포옹과 깊숙한 입맞춤으로 영겁의 그리움을 삭히고 삭혔다. 허리를 굽혀 너울거리는 물속을 살펴보면 억새 씨앗들이 물결 따라 춤추는 건지 작은 벌레들이 움직이는지 기연가미연가하다.
달문에 세 시간 머무는 동안 난 비옷과 겨울 잠바를 입고 벗고를 반복하는 칠면조가 돼야 했다. 갑자가 짙은 안개가 몰려오면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찬란한 태양빛이 구름을 헤치고 쏟아 해맑은 날씨로 바뀌면 겉옷을 벗고 또 벗어야 했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면서 체감온도가 영하로 뚝 떨어져 겨울 잠바를 배낭에서 꺼내어 입어야 했다.
돌아오는 길, 미래의 꿈과 연결될 집안을 돌고 돌았다. 한반도 중북부로부터 만주전역을 근거지로 연해주지역, 중국 하북성과 산동성, 북경인근까지 영토를 차지한 고구려 제국의 꿈을 이어갈 백두산 호랑이가 되어 광개토왕비, 국내성, 환도성 등을 어슬렁어슬렁 거린 것이다. 또 압록강에서 배를 타고 강역을 누비며 조국 땅과 동포들에게 한어린 무언의 꿈도장을 찍어댔다.
내가 사는 재미는 내 곁에 꿈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가고오고 먹고자고 좋고나쁜 인생살이가 고달퍼도 꿈의 쉼터가 있기에 나는 어깨를 펴고 뒷짐질 수 있다.
그 꿈 때문에 간혹 오해받고 매도당한다 한들 나는 뒤로 물러서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멋 훗날 그 꿈 얘기를 들려주는 날이 온다면 모든 허물은 눈 녹듯이 사라져 갈 것을 알기에 오늘의 시련을 감내하련다.
일생 마지막 찬란히 꽃을 피우고 사라지는 대숲일지라도 그 뿌리는 새봄을 맞으면 다시 수많은 죽순을 대기속에 뿜어 내여 또 찬란한 꿈을 꾸리라. 나도 한 생애 꿈을 좇아 보랏빛 찬란한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그 꿈은 영원할 것이다. 꿈속의 꿈이 한순간이듯 지상의 삶도 영원한 영계의 삶에 비추인다면 한순간에 불과한 것을. 그러나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한 순간이기에 내 꿈은 부활이요 중생이다.
꿈 때문에 가슴앓이 하고 상처투성이가 된들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노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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