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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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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느 셋째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답니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1년 전 추운 겨울 어느 날 오후 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소개로 본부교회 이층 거실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었답니다. 마주 앉은 우리 사이는 찻잔도 놓여 있지 않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도 들리지 않는 텅 빈 공간이었지만,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정이 오고가 사랑하는 다정한 연인사이가 되었답니다. 누군가는 사주를 보고 궁합이 맞나 안 맞나 따져 본다지만, 우린 첫 데이트를 하고 나서 7시간 만에 전격적 약혼식을 하고 한 달 만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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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키가 작은 그녀! 서늘한 가을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찬 손은 무척이나 저를 당황하게 했답니다. 그러나 좁은 양미간과 음치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본인이 단점을 그녀는 커버하고 있었기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신의 하나하나의 개별상을 나누어 갖고 있어서 자기에게 부족한 면을 배우자를 통해 발견하여 그것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기뻐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어느 두메산골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를 만나려면 저는 강원도행 버스에 몸을 맡기고 한국에서도 제일 험한 꼬불꼬불 산 고갯길에서 곡예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21개월 동안은 마음뿐이랍니다.

소멸되어가는 천륜도덕을 이 땅에 심고, 외면당하는 하나님을 불신의 가정에 오시게 하고, 형식과 제도 속에 퇴폐해가는 기성제단을 위하여, 돈의 노예가 되어 살인강도까지 자행하는 빗나간 가치의식 속에 풍요한 생명을 안식시키기 위하여, 고갈되어가는 정신풍토속에 쾌락과 침체의 수렁으로 진부되어가는 인간들을 탈출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부유하는 해파리 인생들에게 삶의 좌표를 설정하여 희망을 제시하고 생의 출발점에서 머뭇거리는 학도들에게 나침반이 돼 보고자, 한 톨의 밀알이 되어서 흙속에 파묻혀 한 맺힌 뜻성사에 실적을 세우고 육천년간 갈구하던 창조본연의 꽃동산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우린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공산주의를 이 땅에 몰아내기 위해, 아니 평양을 가로질러 북경, 모스크바에 통일세계의 마크를 걸기 위해 우린 투쟁하고 있습니다. 안락한 생활환경속에 메말라가는 사랑의 씨앗에 단비를 뿌리려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과 이상의 나무를 심기 위해서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권위와 전통 속에 해묵은 기성관념을 깨뜨리고 선지선열들이 희원했던 에덴의 꿈을 피워보고자 우리는 만났던 것입니다

“아직 나에게는 패기와 용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며 간구하시던 선생님의 처절한 기도 속에서 저는 알았습니다. 혹자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종교지도자라고 추켜세우지만, 당신이 아니면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을 해원하여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는 팔다리가 쑤시고 혀가 갈라지고 졸음이 쏟아져도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무는 고역을 감수하는 불쌍한 광야의 사나이임을 알았습니다. 직업 중에 가장 고달픈 직업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임무였습니다. “복귀섭리 한 해가 늦어질수록 몇 만 명이 지옥행 열차를 타는 줄 아느냐?”고 울부짖는 초조감 속에 당신의 신화적인 금자탑은 쌓아진 것입니다.

그녀에게 말하노니, 우리만은 복귀사의 피 흘린 자욱위에 쉬지 않고 씨를 뿌리자! 영계에 있는 선영인은 물론 지옥 밑창에서 신음했던 악영인까지 해방되어 협조하는 급박한 이 시점에 통일가에 부끄럼 없는 참아들딸이 되어보자! “책임 다 못하면 사후에 그 후손들이 무덤을 파헤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동산에서 사탄 앞에 쓰러진 무덤을 놓아두겠는가?” 무지와 불신으로 빚어진 섭리사에 그대는 열녀가 되고 난 효자가 되어 눈물을 뿌리며 찾아오신 주님 안에 기쁨과 영광을 돌려 드리자!

그녀와 저는 음악 감상이 공통된 취미랍니다. 복귀사의 상처가 아물고 에덴의 꿈이 실현될 때, 그녀는 창조본연의 이브가 되고 난 아담이 되어 폭신한 소파에 몸을 묻히고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이나 ‘요한 스트라우스’에 ‘안네 폴카’를 들으면서 따스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영원한 사랑에 보금자리를 꾸미렵니다.

<양주교역 고암교회장>

* 위 글은 1976년도 통일세계에 실린 경기교구 웅변대회에 출전했던, 34년된 원고입니다. 증언집에 투고할 원고를 쓰려 자료를 정리하다 튀어 나와서 올려 봤습니다. 사진은 1800가정 축복후에 일본협회에서 편집하여 출간한 新天地 特別號의 표지와 사진입니다. 우리 부부가 맨 앞에 나온 사진이라 가보로 갈무리를 했지만 자주 이사를 다녀 헤졌습니다. 저희 부부 옆에 서 계신 서양부부는 축복때부터 지금껏 아프리카 선교에 일생을 바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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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박순철님의 댓글

대숲님, 이런 것을 불감청 고소원이라고 하지요.
이미 등단한 소상호, 고종우, 이종선......
충분히 낙양의 짓가를 올릴 사람들과 함께
일을 저질러 볼 만하겠습니다.

나의 3위기대 중의 막내가 경북 예천군에 있는
은풍중학교의 양승모 교장인데 글솜씨가 탁월합니다.
개인시집과 공동시집을 여러 권 가지고 있고,
국궁에도 일가견이 있는 쓸만한 사람입니다.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소중한 역사의 가치를 아는 분이 이옥용 회장님이시요. 지금은 인쇄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수택리인쇄소의 활판들은 잘 보관하고 계신지요.

이순희님이 공주출신이라는데, 저의 공직출발은 봉황동 282번지 산꼭대기에서 아침마다 물지게 지는 삶으로 시작했답니다. 공기총수금하려 공주군 일대 온 면을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누볐지요.

박순철 교장선생님, 현재 통일교인들만의 문학동인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학 원두막 하나 얼기설기 지어봅시다.

박순철님의 댓글

아무리 말을 바꾸고 생각을 뒤집어 보아도 그날의 매서운 칼바람은 잊을 수가 없군요.
화장실을 참기 위하여 전날 저녁부터 일체 물을 마시지 않은 고생도 추억이고요.
그런데 드디어 실내로 입장했을때의 그 따뜻한 실내 공기의 훈훈함.
행복했습니다.

성수식을 하고 단상에서 내려 오는데
앞에 있는 객석에서 큰 소리로 환호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의 무리.
어머니, 고모님, 큰 처남과 처형.
핏줄은 알아보나 봅니다. 그 많은 신랑신부 속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또 행복했습니다.

그렇게해서 35년이 지나갔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헛된 세월을 살은 것은 아닙니다. 적은 실적이라도 있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헛헛하고, 조여드는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는 나만의 전유물이기를 강조합니다.
우리 가정들은 모두 그냥 그렇게 물흐르듯 순탄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정해관님과 이존형님의 한 겨울 추억담에 아령칙한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춥다는 단어를 쓰지 않고 추운날을 표현한 고종우님의 댓글은 시인답습니다. 직설법은 시가 아닌 산문이죠.
황을님의 말씀대로 각각의 진분홍 꿈의 퍼즐을 영계에서 맞추 봅시다. 작품명- 1800가정 퍼즐!

고종우님의 댓글

콧물이 흘러 고드름이 되고 콧물이 흐르는 감각도 못느끼며 얼굴은 칼로 다지는듯 애렸어요.
출발이 매서웠어요. 그 매서운 삶, 쓸어지지 않고 아직 건제 하니~~~~
귀한자료 보고 그날을 회상하니 감회가 진 분홍 입니다.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서양부부 이름을 확인하려 축복당시 축복자 명단을 훑어보았더니, 성과 이름이 알고 있는 것과 틀리네요. 현재 라스베이거스 공관을 책임을 맡고 있는 처남을 만나면 확인해 보렵니다. 이번 구정때 잠시 귀국한다고 했거든요. 예전에 처남이 아프리카 선교사 시절에 그 부부와 친분이 두터웠답니다.

문여사님 말대로 저의 가문에 기념비적인 사진입니다. 당시 일본신랑들은 흰 넥타이로 통일되어 일본식구가 확연히 들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화보집은 일본신랑 신부 위주로 편집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양부부와 대숲 부부가 선줄에 카메라 앵글을 맞춘 사진을 표지사진으로 한 것은 로토 당첨에 비교할 수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간신히 입수한 그 화보집이 수십 차례 이사짐속에 구겨지고 가장자리가 헤어지고 낱장으로 떨어져 나가버렸습니다. 10여년 전에 역사편찬위원회에 원본대로 깨끗이 보존된 화보집을 발견하고 뛸 뜻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눈요기뿐! 작년에 34주년 부부사진첩을 만들려고 역사편찬위원회에 전화해서 그 화보집 표지를 촬영하고 싶다고 간청했으나. 세계일보 별관에서 이사한 이후 자료정리가 안되어 그 화보집을 찾을 수가 없다네요.

혹시 일본가정국에 자료로 보존되어 있다면 그 화보집 표지만이라도 칼라복사해서
보내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소중히 보존하겠습니다.

문정현님의 댓글


일본 페밀리 잡지에 등장한 기념비적인 사진...
신부님들의 설레이는 모습은 하나같이 면사포에 가리졌고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합니다. 요즘 신랑신부들 보면 부럽죠.

이존형님의 댓글

아휴 세상에 그날처럼 추운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귀하디 귀한장면 영원토록 간직한 채 행복하세요.

축복 35주년이 새삼스러워집니다.
남은 생일랑 후회되지 않도록 잘 살아보아야지 하면서
나도 행복해지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그날 참 추웠지요.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이나 ‘요한 스트라우스’에 ‘안네 폴카’를 들으면서 따스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영원한 사랑에 보금자리를 꾸미셔서 천운을 상속받은 자녀들이 자랑스럽게 성장한 것으로 압니다. 그리운 한 날을 회상케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굉장하십니다. 정말세월 많이 갔습니다.
그래도 선배님 너무너무 존경 스럽습니다
서양부부 선배님은 존함이 무엇인지 궁금 하기도 하구요.

문정현님의 댓글

귀한 자료를 가지고 계셨군요.
요즘은 실내가 스팀이 다 되어도
신부님들이 하얀색 코트를 입고
당당하게 있는데....
추운날 !~ 축혼행진곡 !~ 축복축일
고생이 많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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