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변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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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자격과 주인의식
매사에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책임감, 적극성, 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주인의식”과 “주인자격”의 의미를 잘못 인식하여 주인의식을 가져야할 관리자의 입장에 있는 자가 주인자격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여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다.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소장이하 여타 직원들은 당연히 주거자인 입주민 어느 누구보다도 아파트내의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주인일 수 없다.
마치 어느 시(市)의 시장이나 시청공무원들은 일반 시민이 모르는 - 어쩌면 굳이 알 필요조차 없는 문제를 잘 알고 시행하고 처리하려고 밤낮없이 수고하고 있다. 그들은 시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며 그 일들이 그들의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충직한 공직자라면 주인의식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봉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주인일 수 없다. 주인은 각자 자기 생업에 묵묵히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이다. 그래서 시장이하 공직자들을 공복(公僕)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교회생활과 교회구조로 돌아가면 얘기가 달라지려고 한다. 사실 달라질 수도 없고 달라져서도 안 되는 일인데 말이다. 나는 말귀를 충분히 알아들을만한 분한테 교회의 주인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전출 전입을 하며 들락거리는 목회자가 아니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일반 식구(신도)들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 말의 이면에는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게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목회자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식구 중심의 열린 교회 운영을 주문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져 나갔다.
어느 주일날 설교 시에 그분은 목회자가 교회의 주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 하고, 심방이며 각종 애경사에 참여하며 주일학생, 성화학생, 일반식구등 총체적 관리에 신경을 쓰는 현실을 볼 때, 일반식구 어느 누가 이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도 반문하면서 교회의 주인은 목회자라고 단정 하였다.
오죽했으면 주된 설교 내용으로 “주인의식”이 아닌 “주인자격”을 거론 했을까마는 나는 시종 무표정 속에서 일부이길 기대하지만, 오늘날 우리목회자들의 의식세계를 새삼 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묻고 있었다.
- 만약 당신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갈 때 백성 또는 부하들 (주인 반대의 개념이 잘 생각이 안 나서 )을 남겨 두고 주인이 떠나가는 것입니까? -
부모의 심정을 지닌 충실한 관리자로서는 만족 할 수 없고, 오직 주인자격으로 대접 받아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이 또한 예사 문제가 아니다.
물론 원리적 식견이나 공직자로서의 업적과 노고가 어찌 평 식구들과 같을까마는, 엘리트 의식은 있고 인간적 겸양이 부족하면 소통부재로 곤경에 처한 정치지도자들의 낭패와 고배(苦盃)를 우리도 맛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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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형님의 댓글
없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맷돌과 숫돌의 사명이자 그의 본분입니다.
맷돌이 콩가루를 갈았지만 주인은 아니지 않는가요?
콩가루의 주인은 분명히 맷돌에다 콩을 넣어서
맷돌을 부지런히 돌리고 돌린 사람의 것입니다.
단지 맷돌과 숫돌이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아니하고
그 사명을 다 하였을 때 주인으로부터
관리하는 자리에 놓일 수가 잇을 듯합니다.
나무를 심으면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새 자라난 큰 나무가 됩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자기가 심은 나무의 자람을
자기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나무는 언제나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그 고장을 떠날 때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내가 심었노라고
패 내어 가는 일은 없습니다.
거기서 본분을 다하고 떠나면 그 나무의 주인은
반드시 그 고장의 것이고 다음 후임자가
관리자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암소의 울음소리와
딸랑딸랑 워낭의 소리를 장맛비 몰고 오는 여름날의
태풍으로 한마디 드리고 소꼴 베러 들판으로 갑니다.
.
정해관님의 댓글
이치는 간단하다고 생각 합니다. 과거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공복(하인)이 주인 노릇을 하는 선천시대이자 아날로그 시대 였지만, 새 시대는 주인 자격이 있는 자가 주인이 되고 그 주인으로부터 녹을 먹는 공복은 공복 다워야 하는 것이 후천시대이며 디지털 시대임을 일깨우시는 교훈을 새겨 듣게 됩니다.
요즈음 남아공에서 승전보로 한창 뜨고 있는 토종 진돗개 별명의 허딩크 감독도 '소통의 리더십'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실례를 타신지석으로 삼아야 하리라 생각 됩니다. 물론 '녹을 먹는다'라는 부분만 강조하여, 리더와 따르는 조직원의 관계도 단순한 주종관계로 설정함에 문제가 없지는 아니할 것이나, 주인 의식을 지닌 민주적 리더라면, '섬기는 리더십' '소통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새삼스럽게 '위하여 사는 존재'라는 말씀을 입으로만이 아닌, 상대를 위한 실천에 그 의미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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