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야기 5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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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5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제가 협회 학생과장으로 근무 하면서 성화학생 교육 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상헌 통일사상연구원 원장님의 자문을 받기 위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제가 찾아온 사유를 들으신이상헌 원장님께서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협회원리시험을 합격하여 원리강론을 거의 다 알 정도가 되었지만 성경지식도 부족하고 참아버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헌 원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말씀의 내용을 잘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참아버님의 말씀과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世系)에는 마리아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여인이 나오는데 첫 번째 여인이 다말입니다. 성경말씀 66권은 꼭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만 정리하여 편집된 정경(正經) 말씀인데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다말의 이야기”가 외경도 아닌 정경에 왜 기록이 되어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신약전서 첫 번째 말씀인 마태복음 첫 장 첫 절에 기록될 만큼 중요한 예수님의 족보(世系)에 왜 자랑스럽지 못한 다말을 포함한 네 명의 여인이 기록 되어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나 목사님들도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 내용입니다. 오직 참아버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모든 의문이 풀릴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는 요셉의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도중에 흐름을 끊고 갑자기 뜬금없이 38장(2페이지 분량)에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유다와 다말의 이야기”가 삽입 되어있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12 아들 중 넷째 아들로써 형제들이 아버지인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요셉을 미워하여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온 요셉을 죽이려고 하였을 때 죽이지 않고 상인에게 팔자고 제안하여 요셉의 목숨을 살린 자입니다(창37/18-28).
그 후 형제들과 같이 살지 않고 고향을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내려가서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결혼하여 장자 엘과, 둘재 아들 오난과, 셋째 아들 셀라를 낳고 살다가 이방 여인인 다말을 장자 엘의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창38/1-6).
그러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惡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므로(창38/7), 유다가 둘째 아들 오난에게 네 형수에게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38/8)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하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을 하였습니다(창38/9).
창38/7: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창38/8: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창38/9: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이러한 관습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형제의 부인에게 들어가 그 죽은 형제의 가계(家系)가 존속되게 하는 긍휼과 사랑의 법인 “계대결혼법”(繼代結婚法)이 제정(신25/5-10)되기 전에 관례화 되었던 관습입니다. 이때 태어난 아이는 자기 아들이 아니고 죽은 형의 아들이 되어 그 형의 모든 재산과 권리를 이어받게 되므로 오난은 아들 낳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러한 오난의 행위는 여호와의 뜻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惡하므로 여호와께서 둘째 아들 오난도 죽이십니다(창38/10).
창38/9: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마저 그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하여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할 때 까지 친정집에서 수절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여 다말은 친정집에서 셀라가 장성할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창38/11).
그러나 유다의 아내가 죽고 셀라가 장성한 후에도 유다는 셀라마저 죽을까 걱정하여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참다못한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창녀로 분장하여 목숨을 걸고 시아버지인 유다를 유혹하여 잉태를 하게 됩니다(창38/12-18).
석 달 후에 며느리 다말이 잉태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다는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창38/24)고 하였지만 다말이 끌려 나가면서 창녀로 분장한 다말에게 유다가 약조물로 준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보여 주면서 이 물건 임자로 잉태하였다고 하면서 이 물건이 뉘 것인냐고 물었습니다(창38/25). 유다는 그 물건이 자기 것임을 알아보고서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창38/26).
창38/24:석 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창38/25: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창38/26: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 다. 내가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 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말은 쌍태를 잉태하여 해산을 하였는데(창38/27) 나중에 동생(次子)으로 태어나야 될 베레스가 형(長子)으로 먼저 태어나야 할 세라를 복중에서 제치고 먼저 태어나서 형(長子)이 된 것입니다.
창38/28: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紅絲)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창38/29: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렸고
창38/30: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이름을 세라라
불렸더라.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 입장에서는 子女(長子權)를 상실하였고, 인류의 입장에서는 父母(父母權)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 가정을 대신한 아브라함 가정에서 子女(長子權)복귀를 통한 父母(父母權) 복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삭 가정에서 야곱을 통하여 외적 장자권 복귀(아브라함, 이삭, 야곱 3代)를 하였고, 유다 가정에서 베레스를 통하여 내적 장자권 복귀(야곱, 유다, 베레스 3代)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다말이라는 여자는 하나님의 혈통, 즉 祝福이라는 것을 중요시한 사람입니다. 血代를 이어받는데 어떠한 모험이라도 하기 위해 나선 역사적인 대표 女性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자리와 같은냐 하면 해와의 자리와 같습니다. 해와는 인류의 어머니로서 하나님의 直系 전통적 계대를 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등한시하여 파탄시켰습니다.
그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해와 보다 나은 여성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 망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血統의 계대를 남기는 것이 자기 生命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여자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다말입니다.
야곱은 리브가의 복중에서 싸웠지만 次子로 태어나서 長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러나 베레스는 다말의 복중에서 싸워 베레스가 장자의 기업을 바꿔치기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복중은 아들 딸이 태어나는 근본인데 그 근본에서부터 바꿔치기 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바꿔치기 한 것이 아니고 복중에서 바꿔치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혈통 복귀의 터전위에 메시아의 탄생이 가능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중에서 바꿔쳐서 먼저 태어난 아들에 대해 사탄이 “내 아들이다!” 하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중에서 바꿔치지 않고 먼저 태어나게 되면 사탄편이지만, 복중에서 바꿔쳐 가지고 먼저 태어나게 되면 하늘편이라는 것입니다. 다말의 복중에서 싸워 가지고 베레스가 세라를 물리치고 태어났기 때문에 長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랬으니 태어나면서부터 長子입니다. 베레스는 필연적으로 次子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長子의 입장으로 태어났으니 善이 먼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탕감과 복귀의 공식” 말씀 중에서)
그때 유대의 법은 과부가 아기를 잉태하게 되면 돌에 맞아 죽게 되는데 다말은 이러한 엄청난 복귀섭리의 내용을 알 리가 만무하였지만 오로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혈통(血統)의 계대(繼代)를 남기는 것이 자기 生命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다말은 이방 여인으로써 두 남편을 잃은 과부가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동정 받지 못하였고,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시부모에게도 버림을 받아 친정으로 쫓겨 갔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상복을 입고 외롭게 살아가면서도 세상의 법도와 관습과 상식을 초월하여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야곱 가정의 혈통과 血代를 잇는 것을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런 다말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시고,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다말을 유대민족의 어머니로 세웠던 것입니다.
다말의 생애는 교회 초창기에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세상으로부터 욕먹고 손가락질 당하고 핍박을 받는 외로운 자리에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오로지 하늘과 참부모님만을 생각하고 뜻 길만을 따라 나온 초장기 식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적으로나 세상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식구들의 모습이 세상에서 출세를 하지 못하였고, 가진 것 없이 초라하고 부족한 모습이지만 하늘의 기준에서 보실 때 모두 다말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라 믿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축복받은 야곱의 12아들 중에 왜 유다를 長子로 선택하였겠습니까?
야곱은 요셉이 총리대신으로 있는 애급으로 들어와서 같이 살다가 죽게 되었을 때 12아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한 사람씩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후일에 당할 일을(예언과 축복) 이르는 내용이 있습니다(창49/1-27).
장자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힌 자라고 하였습니다 (르우벤은 과거 그의 서모인 빌하와 간통(창35/22)을 하였다)
창49/4:물의 끊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 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여동생인 디나가 강간당한 것에 분개하여 잔인하게 복수하여 살인하고 약탈하였으니(창34/25-30)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창49/7: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 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그러나 넷째 유다에게는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절하고,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고 축복을 하였습니다(창49/8-12).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유다의 후손들에게 복종할 것을 예언하였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유다의 후손인 다윗 왕가에 의해 성취되었고(삼상17/12,삼하5/1-2),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의 후손으로 오심으로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빌2/9-11).
창49/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 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49/8: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 할 수 있으랴
창49/10:홀(왕의 지휘봉,권장)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리고 그 후 천년이 지난 후에 여호와의 뜻을 거역한 북조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제(除)하신지라 앗수르에게 멸망하여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게 하심으로써 결국 유다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왕하17/15-23).
왕하17/1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除)하시니
유다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리라.
유다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유순한 자요, 부인이 죽은 후에 창녀의 유혹에 넘어갈 만큼 생활이 올 바르지 못한 者였습니다. 요셉처럼 세상 적으로 출세하고 능력이 있는 者도 아니었습니다. 라헬의 소생인 요셉과 베냐민처럼 평소에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지도 못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유다를 축복하는 창세기 49장 이전의 기록상으로는 유다는 암사자나 수사자처럼 용감한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를 크게 보시고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절하는 長子로 세우는 축복을 하시고 모든 백성이 복종하는 유대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유다와 다말은 세상적인 상식으로나 인간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둘 다 부끄러운 者 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크게 보시고 유대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또한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의 상식이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하는 기준과 복귀섭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참부모님을 믿고 생활하면서 솔직히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지만 참부모님께서 결정하시고 경영하시는 일들 중에 인간적인 우리의 생각과 세상적인 상식의 기준에서 판단할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우리의 판단기준과 섭리를 경영하시는 하늘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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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배님의 댓글
진리는 불변한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선과 악이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선과 악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에 순종굴복하면 선하고 불순종하면 악하므로 죽임을 당합니다
여호와의 말이 곧 법으로 전제군주국가의 독재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타락이 한남자에 한여자의 일대일 사랑이 아닌데서 출발했는데
복귀라는 이름으로 반대의 경로로 사랑을 하는 것은 타락이 아닐까요???
타락한 인간을 두번 타락시키는 천사장식 악법임을 알때 벗어날수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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