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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통일교 평화프로젝트, 국가가 할 일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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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통일교 평화프로젝트, 국가가 할 일 아니었나 


            문용대(작가)



정교 분리는 민주 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종교가 정치 권력을 지배해서는 안 되며, 국가는 특정 종교의 교리나 이해를 정책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는 자유와 다원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다. 그러나 이 원칙만으로 세계 평화를 향한 장기적·초국가적 구상까지 설명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일 해저 터널 구상은 수십 년간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경제성, 안보, 외교적 파장 등 현실 정치의 언어로 제기된 쟁점이 적지 않았다. 이 사업이 통일교와 깊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은 논쟁을 한층 증폭시켰다. 많은 이들이 이를 종교의 정치 개입, 교세 확장, 자본 축적을 위한 시도로 단정해 왔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정리하기에는 배경과 맥락이 지나치게 복합적이다.


통일교 구상에서 한일 해저 터널은 단순한 토목 사업이 아니었다. 일본과 한반도를 물리적으로 잇는 통로이자,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상징적 관문으로 설정됐다. 구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 북미대륙까지 연결하는 피스로드, 즉 국제평화고속도로, 남북 접경지 평화공원, 나아가 한반도 유엔 제5사무국 유치 비전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개별 사업의 나열이라기보다 분단과 대립의 공간을 연결과 공존의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연속적 평화 프로젝트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구상을 실현할 권한이 어디에 있느냐다. 답은 분명하다. 국가와 정치권이다. 예산, 외교, 국제 협약, 안보 결정 어느 하나도 정치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 종교나 시민 사회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지만, 이를 제도와 정책으로 구현할 권한은 없다. 이 지점에서 구조적 긴장이 발생한다. 대의는 정치 바깥에서 태어나지만, 이를 현실로 바꾸는 열쇠는 정치가 쥐고 있는 구조다.


이 긴장 속에서 대의는 종종 정치의 ‘정문’이 아니라 ‘뒷문’을 두드린다. 공개 토론과 공식 절차만으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정치 현실 앞에서 설득, 접촉, 비공식적 영향력 같은 우회로가 선택된다. 이를 곧바로 음성적 행위나 부정한 거래로만 규정하는 것은 사태의 일면만을 보는 시각이다. 물론 로비는 투명해야 하고, 사익을 위한 영향력 행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물어야 한다. 공적 대의조차 제도의 정문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정치 구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교 분리 논쟁이 격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가 장기 비전과 초국가적 과제를 감당하지 못할 때, 그 공백을 종교나 민간이 메우려 하면 곧바로 ‘월권’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그러나 한일 간 구조적 화해, 남북 접경지 평화적 전환, 동북아를 관통하는 국제 연결망 구축 같은 과제들을 어느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비국가 행위자의 등장은 신념의 과잉이라기보다 국가 책임의 공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통일교의 평화 프로젝트는 다양한 비판 속에서도 한 가지 사실을 드러낸다. 국가가 감당하지 않은 장기 구상을 누군가는 붙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구상이 정치 현실과 맞닿는 순간, 정치권과의 협력과 설득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된다. 이를 곧바로 정교 분리 위반의 문제로만 본다면, 논쟁의 초점은 종교가 아니라 평화라는 대의 자체로 옮겨 간다.


이 과정에서 종교도 상처를 입는다. 정치와 접촉하는 순간, 의도와 상관없이 순수성을 의심받고 권력 지향적 집단으로 비친다. 정치 역시 자유롭지 않다. 종교의 대의를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작 결단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한 문제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다. 결국 누구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상태가 반복된다. 이것이 대의와 권한이 분리된 사회가 겪는 구조적 딜레마다.


한일 해저 터널을 비롯한 평화 프로젝트는 여전히 논쟁 속에 머물러 있다. 필요성과 위험성에 대한 검토는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이런 장기적 평화 구상들은 언제나 비국가의 몫으로 남았는가. 왜 정치권은 결단의 순간마다 한 발 물러섰는가.


이 글은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모든 로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교 분리라는 원칙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설명해 주는 만능의 언어는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 문이 끝내 정문으로 열리지 않았던 구조적 책임을 함께 성찰하자는 제안이다.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이런 일에, 대의를 자기 책임으로 감당할 대인배는 없는가.  

종교의 구상을 국익과 공공성의 언어로 번역하고, 단기 계산을 넘어 장기 비전을 선택할 정치 지도자는 과연 등장할 수 있을까. 대의가 더 이상 정치의 뒷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평화의 실질적 출발점일 것이다.


https://m.segye.com/view/20251231509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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