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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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텔레비전 정규방송 채널 외에 케이블TV에서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티브이엔(tvN)의 엑소시스트이다. 이 프로그램의 부제는 “리얼 미스터리 솔루션”으로 “영혼과의 커뮤니케이션,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는 화두를 던진다.
사람은 육신과 영인체로 되어 있다. 우리들이 죽지 않고 오래 살고 싶은 본연의 욕구는 영원히 살도록 지음 받은 영인체가 있기 때문이다. 육신은 식물계, 동물계처럼 유한한 생존기간이 있어 언젠가는 노쇠하여 병들거나 기력이 쇠진하여 죽게 되었다. 허나 참되고 아름답고 의로운 육신생활을 터로 성장하는 영인체는 죽는 순간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머리끝까지 분리되어 제3의 인생인 영계의 삶을 향해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육신의 지상생활의 졸업식이면서 천상생활을 향한 영계의 입학식이 되는 소중하고 귀한 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생살이가 영계의 실존을 알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아예 무시하는 혹세무민한 세상 중심한 삶이기에 이 땅에만 애착을 갖기가 쉽다. 뭇사람들의 지나온 삶들이 거짓되고 추하고 의롭지 못했기에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부담을 느낄는지 모른다. 죽어봐야 좋을 곳에 가지 못할 것이 뻔 하니까.
그러나 싫건 좋건 그 누구도 이 죽음의 문턱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런데 원치 않는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나 제삼자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라면 풀어야할 매듭이 복잡하고 힘들어 진다. 특히 교통사고나 익사사건, 혹은 안전사고나 살인사건에 연루된 죽음일 경우가 그러하다. 전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한 당사자들은 죽은 자신의 육신으로부터 갑자기 분리된 영인체가 공중에 떠서 자신의 시신을 내려다보면 너무도 황당해 하며 애통해 한다. 원통한 죽음에 세상에 미련을 두고 영계를 향해 떠나지 못하고 지상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 난 곳에 같은 사건이 나타나는 현상은 그 영인의 한풀이로 보면 된다.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가 걸어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육신을 잃어버린 한 많은 영인이 갈 곳을 가지 못하고 떠돌다가 머물기에 적당한 장소나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곳에 머물거나 그 사람 몸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영인이 머무는 장소는 흉가(凶家)가 될 수도 있고 영인이 몸속에 들어간 사람은 빙의현상으로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되어 폐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스무 살 전후로 교회 사택에서 생활하며 봉사활동을 할 때이다. 교육관 주방을 책임진 아가씨가 나를 은근히 좋아한 모양이다. 목사 부부가 세미나에 참석하려 간 날 밤에 그녀는 장식장에 놓인 인삼주를 마신 취기로 사랑의 고백을 하며 다가왔다. 나는 남녀는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단호히 거부하며 축복성혼을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뱀으로 상징된 타락한 천사장과 해와의 허물이 성적 타락인 간음이요 음란임을 가르쳐 온 교사로서 그 사망의 멍에를 순간적 쾌락으로 덤터기를 쓸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순간, 그 녀의 검은 눈동자가 돌아가 흰자위를 드러내면서 지옥 밑창에서 들어오는 듯한 “히히히~ 히히히~” 비웃음을 내뱉었다. 나는 한 겨울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 몸에 소름이 꽉 끼쳤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나는 오밤중에 교회 처녀가 뛰쳐나가 고요한 동네에 소란을 피울까봐 황급히 가로 막았다. 허나 그녀는 우악스럽게 필사적으로 나를 맞서 밖으로 뛰어가려 했다. 그때 빙의현상이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떤 악영인이 그녀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연약한 여자에게 황소 같은 힘이 솟구친단 말인가. 나는 하늘 앞에 기도를 올리면서 그 녀 두 팔목을 안간힘을 다해 부여잡고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듯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얼마 후 그녀는 의식을 되찾은 듯 본래의 모습으로 조용히 성전에 들어가 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그녀는 짐을 챙겨 떠나려 했다. 나는 떠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니 매듭진 곳에서 매듭을 풀어보라고 권고하였다. 훗날 그녀는 좋은 신랑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십여 년전 내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선교사로 활동할 때다. 당시 레바논의 베이루트 시가지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간에 무력충돌이 자주 일어나 서로 죽고 죽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본거지가 요르단에서 베이루트로 옮겨져 이스라엘군이 무차별 폭격을 가하여 폐허의 흉측한 유령도시로 변해 버렸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도심지로 들어오는데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밤거리에 을씨년스럽게 빌딩 곳곳이 처참하게 파괴된 빌딩숲 사이를 지나쳐 간이 콩알만 해졌다.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자주 전기불이 나가고 전화가 불통되는 게 예사였다. 한 교인 가정을 심방 갔더니 아파트 창문을 비닐로 얼기설기 막아놓고 살고 있었다. 폭격으로 온 아파트 단지 유리창이 박살나 버렸고 보수하고 싶어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 속수무책이란다.
일요일을 맞는 새벽 두시 경이던가, 교회 사택에서 깊은 단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여인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한 맺힌 서러운 울음인지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 졸지에 남편도 잃어버리고 자식도 잃어버린, 행복하였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주부같았다. 너무도 원통해서 막막해서 절망적인 슬픔의 한이 목구멍에 꽉 차 터져나오는 울부짖음이라고 직감되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방금 돌발적인 소리가 꿈속인가, 생시인가 판별이 쉽지 않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위에 귀를 기우렸다. 그러나 쥐죽은 듯 조용할 뿐이다. 환청인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기도를 마친 후에 옆방에서 잠을 잔 십여명의 전도사들에게 물었다. 한 밤중에 처절한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었냐고? 그러나 그런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성염으로 온 사택을 성별하고 베이루트 도심지에서 전쟁이나 내란으로 죽은 사람들을 모셔놓은 기독교인과 무슬림 공원묘지들을 방문하고 그들의 명복을 비는 축원을 간절히 올렸다. 이후 그 여인은 나타나지 않아 편안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육신과 영인체는 나무와 과실에 비교할 수 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열리게 하는 목적이 있고 감나무는 감을 열리게 하는데 목적이 것처럼 인간의 육신은 영인체를 성장시키고 완성시키는데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영인체를 성장시키는 요소는 참되고 아름답고 의롭게 사는 삶이다. 그 반대의 인생살이였다면 먹을 수 없는 풋과일이나 벌레 먹은 과일, 혹은 상처 난 과일이 되어 창고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그 영인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저급한 흑암의 영계급에 머물러 있기에 후손의 몸을 빌러 재림부활하여 보다 더 좋은 영계급으로 승천하여 천국에 입성하려는 소망을 안고 살아간다.
누구나 진리 말씀대로, 아름답고 의롭게 살아간다면 고급 영인체가 되어 저급한 영인들을 인도할 수 있는 엑소시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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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우님의 댓글
훌륭하십니다. 저 높은 차원의 글을 읽으며 모방심이 솟납니다.
^^^제가 수필문학을 하는 이유는 진솔한 고해성사같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허구가 가능한 소설과 다른 점이요, 상징성과 은유법적 기교가 필요한 시문학과 다른 점입니다. 제가 더 벌거벗은 임금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은 수필을 쓸것만 같은데, 속옷까지 벗을 용기가 아직 없음을 자탄하고 있습니다.^^^
댓글의 의미를 교훈삼고 있으며 특히,
"제가 더 벌거벗은 임금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은 수필을 쓸것만 같은데, 속옷까지 벗을 용기가 아직 없음을 자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속마음은 제가 특히 공감 하는 부분 입니다.)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조항삼 형님, 제가 수필문학을 하는 이유는 진솔한 고해성사같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허구가 가능한 소설과 다른 점이요, 상징성과 은유법적 기교가 필요한 시문학과 다른 점입니다. 제가 더 벌거벗은 임금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은 수필을 쓸것만 같은데, 속옷까지 벗을 용기가 아직 없음을 자탄하고 있습니다.
소상호님의 댓글
저희 딸 결혼식에 오시어 너무 기뻤습니다
역시 목사님이라 관심 영역이 다릅니다
우리의 삶이 평면적인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얼마나 입체적인 싦을 심각하게 여기며
의미있게 보느냐 하는 것이
종교인으써 영혼을 목적으로하는 생의 자세인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연결되는 우리 평신도의 삶이
이리 저리로 적응하며 흘러서 살기때문에 가치관이나
목적을 영혼의 삶에 두지만
소극적이며 자기삶의 큰 의미가
현실의 삶에 치우치게
될 때가 많습니다다
이 글을 통하여 다시 한번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들여다 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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