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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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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에 사는 들꽃이나 들풀들의 봄은 지구상 어느 지역보다 영화롭고 풍요롭다. 고온 건조한 여름이 오기 전에 창조본연의 가치를 실현하고픈 가치실현욕일 것이다. 황금빛, 상아빛 산달이 연둣빛이나 초록빛 대지로 바뀌는 때도 이 계절뿐이다. 그러기에 중동의 봄은 야생화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생명의 환희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과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요르단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엇비슷한 높이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도시이다. 이 두 도시를 세 번이나 오가며 틈나는 대로 자연을 살폈다. 일부러 작정한 것도 아닌데, 두 번은 이 나라들에서 봄날을 향유한 행운을 품에 안았다. 특히 암만에서 개최된 꽃꽂이 전시회의 자료수집을 위해 들녘을 헤매기도 했고 꽃재배 화원도 방문하였었다.

중동지역은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더 많아 식물들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극심한 일교차와 건조하고 강한 바람으로 광야, 황무지, 사막 등 황량한 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봄철만은 예외이다. 황금빛, 상아빛으로 빛나는 통에 선글라스가 꼭 필요한 황량한 대지가 초록빛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한창 봄날이 되면 온 들녘은 눈부시도록 찬란하기 이를 데 없는 빨강이나 노랑의 원색 꽃들로 뒤덮인다.

베들레헴의 돌담으로 에워싼 올리브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치기 들녘의 오솔길을 한 마장쯤 걸어 들어서니, 아! 올리브나무 아래 더북더북 풀숲에 핀 새빨간 들꽃의 멋스러움이 놀랍게 눈앞에 펼쳐졌다. 하나님은 왜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 주셨을까, 왜 목자들이 제일 먼저 아기 예수에게 찾아가 경배드릴 은총을 입었을까? 순간적으로 그 답이 떠올랐다.

양치기들은 사시사철 들판이나 산달에서 양떼와 더불어 살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특히 밤하늘에 도도히 흐르는 은하수에 배를 띄우며 온 들판에 널린 봄꽃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취했을 것이다. 별천지 같은 봄날을 찬양하고 더욱 아름다운 새봄을 기다리는 목마름은 지고선(至高善)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구약이나 신약의 배경이 된 지역은 여인의 가슴이나 둔부선처럼 부드러운 민둥산이나 구릉지대로 되어 있다. 단지 바위가 많아서 삭막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산밑에서 고개를 치켜들어 산달을 살피면 초목이 전혀 자랄 수 없는 바위산으로만 오인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위산에 올라서면 바위 사이사이에 수없이 핀 꽃무리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지 않은가? 새뜻한 이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봄날에 바위산에 오르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이다.

물이 흐르는 계곡의 벼랑은 어떠하던가? 풀숲과 어울린 수천송이의 봄꽃 군락은 황홀한 판타지아였다.

예루살렘에서 사해를 나무 한그루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황금빛이나 상아빛으로 빛나는 민둥산달을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곳곳이 카펫을 펴 놓은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광경은 봄날에 이슬이 가신 이후 잠시 뿐, 오후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아네모네는 바람이 불면 피고 바람이 불면 꽃잎이 지는 ‘바람꽃’으로 불린다. 아네모네의 어원이 그리스의 전설, 바람의 신 ‘아네모스(Anemos)에서 유래했다. 국내에도 수종의 바람꽃 류가 자생한다.

아네모네는 바람을 무척 좋아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수천수만의 군락을 이루는 것 같다. 사해 인근지역은 항시 바람이 분다. 항시 여름같이 높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사해는 해면보다 수백 미터나 밑에 있어 산달과는 고저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아네모네는 둥근 뿌리에서 7-8개의 꽃줄기가 자라서 각기 한 송이의 꽃을 피운다. 잎은 세 개씩 갈라진 손꼴 잎이다. 현재 세계에 여러 가지 색상의 아네모네가 있다고 하나 내가 살펴 본 아네모네는 모두 빨강색이었다. 수천의 군락에서 몇 송이의 노랑색을 발견했던 기억이 아령칙하다.

이 꽃은 비옥한 토양을 싫어하는 것 같다. 메마르고 살풍경한 광야를 세상에 제일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착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찬송가 233장의 '황무지가 장미꽃같이'란 곡의 장미꽃이란 식물이 아네모네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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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조항삼님의 댓글

아네모네의 꽃말에 얽힌 전설을 보니 불현듯 그 꽃이 보고 싶네요.
시인님의 해박한 지식을 접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소상호님의 댓글

아네모네 전설:

미의 여신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는 활을 잘 쏘는 장난꾸러기였다.

누구든지 '큐피드'의 화살에 심장을 맞게 되면 화살을 맞은 후

처음 본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장난이 치고 싶어진 '큐피드'는 어머니인 '비너스' 여신의 가슴에 활을 쏘았다.

화살을 맞은 '비너스' 여신은 사냥을 하러 온 용맹한 '아도니스'를 보고는

그만 사랑에 빠졌다.

'아도니스'는 사냥을 무척 좋아하는 청년이었기 때문에

'비너스' 여신은 언제나 그와 함께 이산 저산으로 돌아다녔다.

그리스에는 신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비너스' 여신은, 자신은 신이고 '아도니스'는 인간이기 때문에 행여

'아도니스'가 죽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도니스, 위험한 사냥을 계속하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제발 이젠 사냥을 그만두세요."

"아름다운 비너스, 당신이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사냥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혈기왕성한 청년 '아도니스'가 '비너스' 여신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리 없었다.

'아도니스'는 계속 위험한 곳으로 사냥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비너스'는 마침내 걱정하던 비극의 날을 맞이했다.

사냥을 나간 '아도니스'는 산돼지 한 마리를 만나 그 산돼지를 향해 힘껏 창을 던졌다.

그런데 그 창은 살짝 빗나가고 말았고 성이 난 산돼지는 '아도니스'에게 덤벼들었다.

"아니, 빗나가다니…, 이럴 수가! 으윽!"

'아도니스'의 신음 소리를 듣고 '비너스'가 달려 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의 옆구리에서는 새빨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도니스'는 눈을 꼭 감은 채 누워 있었다.

'비너스'는 '아도니스'의 시체를 부등켜안고는 슬픔을 참지 못해 흐느꼈다.

"아도니스! 내 말을 안 듣더니…, 흑흑….

그대가 흘린 이 피는 빨간 꽃이 되어 봄이 오면 언제나 다시

아름답게 피어날 것입니다!"

비너스 여신은 피로 젖은 땅 위에 방울방울 술을 떨어뜨렸다.

그 곳에서는 정말로 빨간 빛깔의 꽃이 피어났다.

훗날 사람들은 봄바람을 타고 잠깐 피었다가

바람을 타고 져 버리는 이 꽃을 '아네모네'라고 불렀다.



정해관님의 댓글

예전에는 먼저 댓글을 쓰고 다시 보는 경우가 없었는데, 요즈음 바쁘다는 핑게로 나중에 본문과 댓글을 함께 보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이태곤(대숲)님의 댓글

후목님이 시인이라 뭘 느끼신 모양이죠. 긴머리의 여인이 어느날 미장원에 가서 짧은 머리를 했다면 이유가 있겠지요.

제가 급히 일본에 가야기에 귀국해서 말문을 열겠습니다. 출국시간에 맞춰 아침 일찌기 공항에 도착해 보니, 난생 처음 여권을 집에 놓고온 실수를 범해 할 수 없이 오후 비행기로 바꾸고 집에 잠시 들렸습니다. 덕분에 이발도 하고 구두도 닦고 손수건도 챙길 수 있어 전화위복된 셈입니다.

소상호님의 댓글

이렇게 한번에 여려수필을 올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두믄 두믄 올리면,정독을 하면서
곰곰히 마음에 담을 텐데
단숨에 4편을 올려
홈을 무겁게하여 읽어야하는 숙제를 두었습니다
소상호 시에대한 항거 표현은 아니겠지요 하하하
하여튼 좋은 글을 접할 수있게하여 감상합니다
역시 오래묵은 장맛처럼
글이 깊은 맛과 감칠맛이 납니다
감사드립니다

김명렬님의 댓글

곳곳에 다니시면서 풍부한 경험과 글 솜씨로
올려주시는 좋은 글들이 부족한 독서력도 길러주고 여러가지로 좋습니다.
홈이 더욱 실속이 있어가는것 같기도 하구요.

조항삼님의 댓글

목사님의 글을 음미하노라면 성지순례를 하는 느낌이 드는 군요.
감칠맛나는 필치로 중동지역의 식물의 생태 환경의 변화무쌍한
단면을 리얼하게 묘사하시는 마력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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