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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의 미래를 열어젖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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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의 미래를 열어젖히고


새로운 다짐과 해양섭리 출발을 위하여 전 세계국가메시아를 하와이 코나로 불으셨다.

❀하나님섭리사의 책임분담 해방권 완성선포교육❀ 에 20일간 참석했다.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부모님을 모시고 매일 은혜스러운 나날을 그 넓은 태평양을 바라 보며

일본 한국 중국 유럽을 생각하며 두 다리를 벌리고 두 손을 들어 아래에서 위로 힘껏 올리며

내 힘에 우주가 움직이는 상상을 하면서 화연 현국 보경 연지 우진 세계지도자 수업을

하고 있는 (현도. 흥주 .현식. 주원 .희수. 연화 .연경. 훈성) 그리고 전 문중의 후손에 연결 ...

하나님의 능력을 접목 가장 큰 축복인 창조성을 우리 후손에게 부여해 주시며 ......

하늘왕국 창건에 개국공신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해양기운을 한국으로 보내는

의식을 나 나름대로 개발하여 진행하며 인류행복을 위한 삶이 후손을 통해 열매 맺기를 기원 했다.


아름다운 야자수사이로 내민 태평양바다에 아른거리는 미래에 우뚝 선 후손들의 장한모습이 나를 황홀지경으로

몰아 지그시 눈을 감으며 미래에 다가설 행복에 취해 미친 사람처럼 태평양과 지구 그리고 우주를 향하여 힘차게

만세를 불렀다.

나는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 딸들보다 남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언제나 마음을 쓰고 살았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말없이 외로운 길을 걸었다.

그 바램의 대가는 나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나는 자식들 교육을 나라와 민족과 세계인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늘 말해왔다.


정말 고맙게도 아들과 딸들은 정도를 걸어가며 잘 자라주었다.

내 사랑하는 큰딸은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월드카프(세계봉사활동기구)에서 활동했다. 언제나

엄마처럼 동생들을 신앙적으로 잘 보살피고 아빠의 경제적 어려움을 말없이 책임졌다.


집안생활비 동생들 학교에 들어가는 모든 경비들을 혼자 감당했다. 지금은 박정현선생의

자랑스런 막내 아들과 축복받아 귀여운 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3살된 외솔녀는 영특하여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

어쩌다 딸집을 방문하면 외손녀는 쏜살갇이 뛰어나와 할아버지 손을

잡고 기도실로 인도 함께 기도하자고 중얼거리는 모습에 천하를 얻은 기분이다.

고맙게도 사위가 장인 장모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승용차를 구입하여 선물도 했다.


귀염둥이 막내딸은 홍익대학교 광고디자인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애니메이션 연구에 열을 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아카데미에서 움직이는 에니메이선

공부에 최선을 다 하며 위대한 미래의 푸른 꿈을 펄치고 있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집념이 강하고 무엇이든지 한다고 하면 해내고 마는 강인한

성격을 가졌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변경하거나 포기하는 법이없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판타날에서 국가메시아 40일 낙시수련중 아버님과 식탁을 함께 했는데 갑자기 물으셨다.

자녀는 어느학교에 다니느냐? 나는 자랑삼아 딸이 이화여대 국문과에 다닙니다.

갑자기 아버님은 뭐야? 왜 선문대 안 보낸거야 당장 집워치워 !


다음 자녀는 몇 학년이야 고등하교 3입니다. 아들은 선문대 보내는거야 알았어 나는 무조건 예 .....

하고 대답할 수 밖에없었다.

그후 아들의 수능성적은 전국3%권에 진입해 서울 상위권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맙게도 아버님과 약속한 설명을 들은 아들은 아빠뜻에 순종하여 선문대를 지원

하여 4년 전액 장학생으로 기숙사비까지 지원 받으며 학교생활을 했다.


대학2학년때 신림동 고시촌에 입소하겠다고 했다. 나는 학원비를 마련해줄 능력이 없었다.

아들은 학원을 찾아 면담을 요청하고 원장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하며 학원비대신 선생님이

칠판에 쓰신 글씨를 지우고 학원청소를 하며 선생님강의를 듣겠다고 통사정을 하여 허락을 필하고

학원으로 출근 했다.

본인의 생각은 행정고시의 토대 위에 꿈을 이루겠다며 매일 서울대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며 책과 고독한

싸움을 했다. 저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면 실패자가 된다고 생각하며 피눈물어린 노력을 했다.

나는 피곤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의 미래을 열어줄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하나님과 담판기도를 하면서 정성의 토대를 마련했다.


청평 40일 기도회를 시작으로 성초를 정심원에 준비해 놓고 아들딸을 위한 성초가 정심원에서 꺼지지 않게 했다. 수련회에 참가하여 아침 낮 밤 기도회에 참가하여 소원을 말하고 소원성취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고 경배 120배 부터 시작하여 1200배이상 쓰러지기 직전가지 경배를 드렸다.


내 정성이 부족하면 합격은 어림도 없고 자식들의 미래는 비극으로 열매 맺는다.

고창에 돌아와 밤12시부터 새벽 3-4까지 4년을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합격하여 거리거리 나붙을 프랑카드를 연상하며 고창시내를 돌고 돌며 하나님께 기도 했다.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하여 쓰러지기도 했고 헛발을 디뎌 구덩이에 빠져 죽을 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쉬면 안 되고. 중단하면 합격할 수 없다고 다짐하고 다짐하며 거리기도를 이어 갔다.


대학교 2학년 때 도전했으나 1차에 실패 했다. 다시 3학년 때 도전하여 1차는 합격했는데 2차에 실패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일관했다.

군복무를 끝내고 다시 도전하여 2007년 시험에 응시하여 1차에 합격하였다


2차 시험전에 나는 시험장소를 찾아 성념으로 시험장을 성별하고 선영과 조상을 불러 협조를 구하고 성전에 엎드려 통곡의 기도를 했다. 아들은 2차에도 합격했다. 3차시험을 앞두고 나는 청평을 찾아 정심원 기도실에서 나 나름대로 연구한 조상들과 선영을 불러 입에 모시고 3차 면접시험장(과천공무원연수원)을 찾았다.


시험장에 들어갈 수 없는 나는 담 너머에서 입에 모신 선영과 조상을 입으로 불며 현국이

에게 달려가 협조하도록 국가메시아 이름으로 명령 하였다.

3차 면접시험을 앞둔 아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면접은 그룹면접과 개인면접이 진행되는데 선문대 출신인 아들은 그룹면접에 함께할 동료를 찾지 못 했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 고시학원을 방문했는데 선생님이 물으셨단다. 면접동료를 구했느냐고

못 구했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수소문하여 전원 서울대생으로 면접동료를 소개하였다.

15일 정도 함께 하는동안 실력부족을 절감하고 최선을 다 했는데도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을 괴롭혀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면접시험 날 자신도 알 수 없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결과를 기다리는데 하루가 천년 같았다. 발표 날에 우리부부는 서울 대조동 집을 방문했다.


정성의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


집에 도착하니 긴장된 아들은 컴퓨터를 열어놓고 식사도 안하고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온 가족이 숨소리를

죽이고 컴퓨터만 바라보고 있다.

한참 후에 아들이 방에서 나왔다. 아무 말도 못하고 두손을 번쩍 들고 있다. 우리는 컴퓨터 옆으로 달려가 보았다

합격자 명단에서 아들의 이름을 발견하고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었다. 합격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놀라운 역사가 실감된다. 만일 그때 성적이 우수한 서울대생 1개조 11명을

소개받지 못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대생 그룹 전체가 합격했는데 그속에 유일하게 선문대생이 낀것이다.

하나님 참부모님 선한조상들 그리고 정성으로 뒷 바라지 해주신 지인 축복가정 형제님께 이제야 감사를 드립니다.


아들이 다니던 지방대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행정고시 합격자가 탄생된 것이다.

환영 프랑카드가 선문대. 천안시. 수원효원중고. 고창거리 여기저기에 나붇고 너무 행복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한 기도 정성의 열매가 맺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의 여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수 많은 축하전화가 나를 울리고 말았다.


큰 아버지(성용규. 강아기 기성가정)승화시 하나님께서 우리문중에 큰 인물을 주시겠다던 말씀이 이제 희생과

봉사의 대가로 문중이 활짝 피어나는 듯하다.


문중이 세계를 향하여 웅비하고 있다. 조카들은 세계적 지도자 수업을 하고 있다.

미국세무사가 된 큰 조카 성현도, 콜롬비아대를 합격한 성주헌과 성현식, 뉴펜대학 치의과에 다니는 성흥주,

일본 동경대에 다니는 성희수, 2009년도에는 집안 여동생(성춘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년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신바람 나는 꿈같은 현실이 늘 나를 초대하고 있다. 이 영광이 문중에 나타나는 것은 조상들이 탕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세에 접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사람에게 투자하며 봉사하고 살아왔지만 이제 더 많이 보태서 되돌아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온 문중 형제들 역시 그런 생각으로 내 뒤를 따른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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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성호갑님의 댓글

언제나 교장선생님의 격려와 응원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계속 비전을 세우고 전진 하렵니다.
그리고 영원히 교장선생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으렵니다.
감사합니다.

박순철님의 댓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뜻을 만드셨으니 길도 만드신 겁니다.
참부모님의 숭고한 뜻에 성씨가문의 뜻이 접목되고,
거기에 성호갑회장님의 뜻이 튼튼히 연결되니
훌륭한 한 매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여기서 만족할 성회장님이 아니시기에
계속해서 정성의 인연을 놓지 아니하시고
오늘도 남모르는 각고의 정성을 쌓고 계실 것입니다.
지성감천[至誠感天]

유노숙님의 댓글

정말 자랑스러운 가족입니다
자녀들도 그렇게 모두 잘자라주었으니 목사님 고생 하신 보람도 있고
우리 모두 하늘앞에ㅡ자랑스런 가정이십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 덕이 아님을 강조 합니다. 부모가 훌륭하니 자녀들도 그랗게
훙륭하게 되는것입니다.

성호갑님의 댓글

언제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정이 수원에서 큰 탕감과 축복을 얻었기에 제2의 고향입니다.
너구나 항삼형제님 자녀들과 우리아이들과 다정한 친구이기에
더욱애정을 느낍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회장님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 동안 수고하신 각고정려(刻苦精勵)의 지난 세월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이 기쁨은 축복2세의 긍지요 자랑이네요.
이 글을 읽는 동안 가슴이 뿌듯하고 내 자녀 나의 기쁨과 같이
최고의 승전보를 접하는 기분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3자녀를 "내로라 하게"성공시킨 성공담은
많은 2세들에게 귀감이 되는군요.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귀한 글 좋은 곳에 저장하여 많은 이에게
홍보하겠습니다.

회장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성호갑님의 댓글

사랑하는 총장님 감사합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까 ? 미래 설계도를 구상하며 모든 축복가정에게 천운이 함께하여
2세들로 인한 기적이 연출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호갑님댁의 경사이자 우리 가정회의 자랑이며, 하늘의 체면을 크게 살려주신 경사였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갑니다. 그런데 그런 본보기를 보고 들으면서도 '강건너 불'로 생각해온 지난날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소상호님의 댓글

읽어보니
우리 딸애 사시합격한 생각이나 (지금은 여의도에서 변호사하고있슴)
더욱 감동적이였습니다
우리집은 애기엄마의 기도와 본인의 뒷바라지가
컷던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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